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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Jul 13. 2020

아지랑이 잔잔히 끼인 어떤 날

나물 캐는 처녀

애인이 오면 몰래 준다는 ‘산마늘’

 봄이 되면 산나물 캐러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 겸 걷기도 하고 산나물을 따며 푸른 경치도 즐긴다. 고국에 있을 때 나도 친구 따라 몇 번 가봤는데, 참 재미있었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산나물을 캐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르고 어느새 다뿍하다. 시장기가 돌면 모여 앉아, 갓 딴 나물에 된장과 삼겹살을 쌈 싸 먹는 맛은 환상이다. 돌아갈 즈음에는 캔 나물을 골고루 나누는 넉넉한 인심도 좋은 기억이다. 


현제명이 작사, 작곡한 <나물 캐는 처녀>에는 나물 캐는 정겨운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푸른 잔디 풀 위로 봄바람은 불고/ 

아지랑이 잔잔히 끼인 어떤 날 / 

나물 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 

고운 나물 찼나니/ 어여쁘다 그 손목”  


봄바람이 불면 처녀의 마음도 덩달아 콩콩 뛰고, 혹시 남정네라도 만나 지지 않을까? 하는 남모르는 설렘으로 들판으로 다니며 나물을 캔다. 바구니에 담겨 있는 고운 나물은  쑥, 냉이, 달래, 민들레, 곰취, 고사리, 고비, 두릅 등이다.  고운 손목으로 뿌리째 먹는 냉이는 캠대로 캐고, 잎을 먹는 곰취는 뜯고, 고사리처럼 줄기를 먹는 것은 꺾는다. 처녀들이 자유롭게 바깥출입을 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나물 캐기는 더욱 즐겁고 기대되는 일이었을 게다. 

 나물은 나무일 수도 있고, 채소일 수도 있는데, 생것 자체로 먹기도 하고 가공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것도 있다. 삶거나 생것에 참기름, 간장, 된장, 고추장, 깨 등을 넣고 무치면 훌륭한 찬이 된다. 우리처럼 산과 들에 나는  다양한 나물을 손질해서 먹는 민족은 없을 거다.

이곳 토론토에도 봄이 되면 다양한 나물을 만날 수 있는데, 이즈음에는 산마늘이 한창이다.  “강원도 산골의 아낙들은 산마늘을 캐면 고이 두었다가 자식도 안 주고, 남편도 안 주고, 애인이 오면 몰래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마늘은 귀한 나물이다.  울릉도에서는 산마늘을 ‘멩이’라고 부르는데, 조선시대 섬으로 이주해 간 사람들이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산마늘을 먹고 수개월 견디며 목숨을 부지했기에 , 목숨을 뜻하는 명(命)이라는 말에서 멩이라고 했다고 한다. 강원도에서는 신선초라 부르기도 하고  족집게 풀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자라는 곳이 한정되어 요즘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여러 해 살이 풀이며, 잎이 달린 포기 사이에 꽃대가 올라와 유백색 꽃들이 피면 수수하면서도 곱기가 이를 데 없다. 

캐나다 산마늘

쓰임새를 따져 보면 마늘처럼 맵고 독특한 향이 있어 그냥 잎을 쌈으로 먹기도 하고 무치거나, 볶기도 한다. 오래 두고 먹기 위해서는 장아찌를 만들거나  묵나물을 만들어 두기도 한다.  약으로도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는데, “자양강장 효과를 비롯하여 독을 제거하며 소화기, 신경계 질환, 부인병, 성인병, 뇌졸증,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효능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약효와 특별한 맛이 소문나다 보니 이를 마구 채취해 내륙에서는 자생지를 만나기 어렵고, 울릉도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한다.  

고국에서는 이처럼 귀한 것이 이곳에서는 공원이나 들에 나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족들과 산마늘 캐는 것도 다른 민족이 갖지 못하는 우리만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재미로 먹을 만큼 캐야지 자생지가 훼손될 정도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나물 캐기가 우리 문화라면, 나물 보호도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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