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름으로 ’달솜‘을 쓰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첫 글로 뭘 쓸까 하다가
작가명 ‘dal som’
즉, ‘달솜’에 대해서 적어보기로 했다.
나는 ‘달솜’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뜻이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뜻깊은 단어다.
외할머니의 남동생, 외종할아버지
줄여서 외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가능했던 것 같지만,
사실 꼬꼬마가 이런 걸 신경 썼을 리 없다.
그냥 외할머니의 동생이라 외할아버지라 불렀던 것 같다.
원래 이름은 달솜이 아니지만,
달솜은 나를 부르는 할아버지만의 애칭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만 날 달솜이라고 부르셨다.
유치원생인 꼬꼬마 시절부터 할아버지가 차 태워서
이곳저곳 구경시켜 주시고, 축제도 데려가 주셨다.
대문 밖에서 ‘달솜아~ 달솜아~’ 부르시며
손에 치킨만 쥐어주시고 가시기도 하셨다.
어릴 때 나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예쁨을 많이 받던 아이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비교도 하고, 내 성격에 대해서 말하면서
조금 상처 입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 나의 세상에,
정말 예쁜 사랑을 보내주신 할아버지셨다.
예쁨 받던 어린이가 대학생이 되어 타 지역으로 떠났을 때,
대학교 기숙사에서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식을 들었다.
언제나 환한 미소를 가진, 따뜻한 분이셨다.
다리가 조금 불편하셨지만,
불편한 것 외에는 다 잘하셨다.
사진도 잘 찍으셨고, 정비하시는 걸 잘하셔서
혼자 차 정비도 하시는 멋진 분이셨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본 할아버지의 모습도
뚝딱뚝딱 차정비를 하시던 모습이었다.
꼬마 달솜이와 할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이
딱 한 장이 서랍 속에 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꺼내어 보지만,
다행히 아직까진 할아버지의 모습이 뚜렷해
자주 꺼내어보진 않는다.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은 뚜렷하게 기억난다.
치킨봉지를 들고 "달솜아~" 부르시며
골목길을 걸어오시던 모습도, 목소리도 기억난다.
기억이 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서 나는 "달솜"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이 단어는 힘이 들고 지칠 때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언제나 나를 사랑받던 꼬꼬마 달솜이로 만들어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단어.
예쁘고 예쁜 달솜.
그래서 나는 브런치 작가 "dal som, 달솜"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