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라는 플랫폼, 이민인의 마음
엄마가 내게 '아휴, 나도 그냥 눌러 버렸어. 발행' 이라고 말했다.
뭔말인가 했더니, 엄마가 알아서 브런치에서 전자책 발행해 주는 행사에 참여하신 거였다. 아, 나도 해야지. 해야 할텐데. 라는 마음만 있었다.
무엇이든지 역시 '마감일'이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약이다. 마감일이 생겼더니 나도 시간을 내어 지금까지 여기저기 써 놓은 글들을 한번에 쭈욱 정리하는 기분이 들어서 뭔가 큰 만족감이 들었다. 아, 그래. 내가 글을 안쓰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이렇게 어떤 형식으로든 여기 저기 써 놓았으니, 그래도 내 스스로를 칭찬하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쨌거나 플랫폼
십수년 전에 한 친구와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글을 열심히 써서 등단을 하고, 그래서 번듯한 '작가'라는 이름을 받을거야.' 맞는말이다. 그런데 나는 뭔가 오기가 생겨서 였는지, '야야! 나도 글을 쓸거야. 대신 난 온라인에 쓸거야.'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콧방귀를 끼며 '그래라. 너는 온라인에 써라. 나는 작가가 될테니.'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본다. 그 대화의 본질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이 든다. 결국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기 위해서이기도 한데,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보고 싶다. 결국 자기 구원을 위해 스스로의 글을 쓰는 것아닌가. 그러니까, 그냥 남의 눈치 보지말고, 그것이 소설이 되었든, 에세이가 되었든, 그냥 일단 어떻게해서라도 몇글자라도 남기는 것. 그것이 제1 우선순위같다. 왜냐하면, 그냥 일에 파뭍히고, 돈 벌고 하는 일에 빠지다 보면 삶이 너무 재미가 없으니까. 인생이 너무 팍팍하니까. 그러려고 내가 여기 이 세상에 나온건 아닐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자신만의 문장,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 그게 나는 진짜 자기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그런 과정을 닮아낼 수 있게 해 주는 브런치를 나는 선택했다. 자꾸 자꾸 그런 '마감일'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척박한 마음에도 한두줄기의 샘물이 더 솟아나는 것이 되니 말이다.
미국에서 한국어로 글쓰기
그래도 사실 나는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 현재의 직장을 잡기 전에는, 마치 온 몸이 화상에 데일것처럼 마음의 상태가 그랬다. 뭐든 조급했고, 급급했다. 이 '소리 질러도 아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은' 미국 땅에 살면서, 뭐라도 해 내야 할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미국이라는 이 땅덩어리의 문제 혹은 이 사회의 특성 같다. 워낙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이의 영역에 침범하면 소송을 거는 문화가 강하고, 또 이 동네의 사람들 집에 몇 개의 총이 있나를 생각하면 더욱 머리가 아찔해진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무기로 만들자 치면, 이 세상에 무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현재의 직장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조금 더 내 자신에 집중하기로 했다. 뭐 인생 그렇게 별 것 있나 싶은거다. 그래서 미국에 살면서 한국어로 글쓰기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사실 영어로 쓰기도 한다. 아주 작은 모임이다. 다만 매일 쓴다. 조금은 고역일 때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안하면 어느날 누군가가 덜컥 내 방문을 열고 쳐들어와서 이렇게 소리칠것 같다. '야!, 넌 미국땅에서 그렇게 찡창쫑 거리면서 이상한 말 할래?! 영어 안 할거면 나가!' 그런 소심한 마음으로 쓰다보니 조금은 재미가 없다. 그래도 그걸 여기 브런치에도 공유하면 조금 더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어로 쓰기는 무엇을, 어떻게 쓸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주저리 주저리 브런치에 쓰는 것도 좋고, 또 정말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설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똬아! 하고 만들어 내고 싶기도 한데, 조금 막막하긴 하다. 사실 브런치도 너무 오랜만에 쓰긴 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조금 정리가 된다.
한국어로 쓰기 - 한국어로 책읽기 독서 모임을 하는데, 거기에서 읽는 책들을 조금씩 써 왔다. 그걸 좀 더 부지런히 써 보자. 지금까지 읽은 책: 앨리스 먼로, 김혜진, 최은영, 황정은, 강화길 - 모두 주옥 같은 이름들이다. 나도 언젠가 저런 이름이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