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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Apr 28. 2021

건강하게 살면서 글을 쓰는 것

나는 그것을 내 삶의 모토로 삼기로 했다.

어느덧 사월 말이 되었다. 미국에서 홀로 산지도 일년이 가까워 온다. 남편과 약 육년은 같이 살았고 일년째 홀로 생활 중이다. 남편은 장기 출장 중. 나홀로 살이에서 일순위로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이순위로 경계해야 할것은 나태함과 게으름이다. 그러고 보면 나홀로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와 주변 환경의 정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크고 작은 일상의 노력들을 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지인과 카톡을 했다. 그녀와의 문자 주고 나눔은 짧고도 강렬했다. 그리고 결론은 '건강하게 살면서 글을 쓰자.'는 것. 그것이 소설의 문장이 되면 좋겠지만, 나는 그냥 '에세이스트'라는 단어도 퍽이나 아름답다고 생각이 든다. 마음의 결들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사람. 그것이 내 삶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다른 것들에 너무 많이 유혹 당하지 말자.

 

#윤여정님을 보며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탄 윤여정님의 인터뷰들을 찾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궁금한건 “브래드 피트를 봤을 때 기분이 어땠냐? 무슨 냄새가 나더냐?”고 물었다는 서양인 기자의 질문. 도대체 왜 그런 이상한 질문을 했을까? 왜 '기분이 어땠냐'라고 묻지 않고 냄새라는 단어를 썼을까? 상대방이 다른 인종의 다른 성별이었어도 같은 질문을 했을까? 만약 내가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아마 나는 그 속내를 정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솔직히 나는 지금도 그 속내가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냄새? 갑자기 웬 냄새? 아무 냄새도 안나던데? 무슨 향수 냄새가 났냐고 묻는거야?”라고 쌩뚱맞게 말했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저게 지금 날 아시안으로 얕잡아보고 헛소리를 지껄이는거야 뭐야?' 라며 분노로 휩싸인 싸움거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윤배우님의 싸움을 걸지 않는, 직접 불같이 화를 내지 않으면서도 유머스럽게 대하면서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너가 지금 얼마나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겠지?’라고 반사 작용로 되돌려주는 말하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난 개가 아닌데." 그 솔직함. 아, 그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렇다. 나도 좀 잘 살아 보겠다고, 한국이, 서울이 너무 살기 팍팍하다고 해서 미국에 왔는데, 또 이곳은 뿌리 깊숙이 백인 우월주의가 깔려있는 곳이었던 게다. 사실 남말할 게 아니었다. 나역시 처음에는 그 백인 기자의 말을 스스로 의심했다. ‘에이. 설마. 진짜로 냄새를 물었을까? 내가 그 (고매한 영어의) 고상한 뜻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오해하는건 아닐까’ 이러고 있었다. 참...... 내안의 식민성이 이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러니까 약 일년 전에

아마도 일년 전쯤이었다. 홀로 열심히 미국의 어딘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백인 남성이  반대편에서 오고 있었다. 아마 나는 날씨가 더워서 모자를 벗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시안임을 알아본 상대편 남자는 나를 향해 마구 소리를 질렀다. 그것 뿐이었고  외에는 어떤 신체적 가해가 없었다. 다만 아주 짧은   초의 순간 동안 그가 내게 퍼부은 소리는 저주였고 증오였다. 그래서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당시에도 일종의 급작스러운  공격에 그가 뭐라고 했는지 이해도 안갔다. 다만  에너지의 크기와 화살이 너무도 또렷이 남아있다. 이걸 증오라고 하는구나. 내가 뭐라고. 그러니까 나의 무엇이 그에게 그렇게나 화낼 무언가를 주었을까?


#다시 윤여정님의 어록으로 돌아가서

나는 그녀가 '지금이 당신의 최고의 순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 조금 눈물이 날 뻔했다. '최고 최고. 우리 너무 그거 따지지 맙시다. 그냥 다 같이 최중하면 안될까. 오스카. 이게 전부는 아니잖아.' 그렇지. 전부가 아니지. 그래서 자꾸 나는 그 말에 또 꾸역꾸역 너무도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친 나의 지난 시간들이 떠 올랐다. 미국에 왔으니 이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보자. 라고 발버둥쳤던 시간들. 일을 할 수 있을때 저축을 많이 해야해. 라고 스스로를 닥달하며 통장 잔액을 보고 또 보는 시간들. 그건 강박같은 것이다.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해 주기는 커녕, 우울감과 실패감같은 음지의 에너지만 만들어냈다. 이민살이에서 '최고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은 일종의 발버둥이고 허우적댐이다. 사실 '뭐가 중한지'도 모르고 어쨌든지 '더 가져볼려고'하는 욕심에서 시작된 허우적댐...... 그런데 그 욕심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들이었나? 그런 생각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무조건 일등, 무조건 최고를 향해 질주하는 것에 대해, 지긋이 내 손을 잡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 나도 그냥 최중하련다. 그리고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 건강한 상태로 글을 쓰는 것이 가장 나를 나답게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길 같다.


2021. 4. 27. 나태함을 박차고 오랜만에 걸은 산책길에서 찍은 사진.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는 게 인생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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