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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Jan 12. 2022

2022년 1월, 한국 방문기

한국, 방학, 얼굴들, 본분 

한국 

올해 2022년은 한국에 입국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는 이제 타국에 사는 한인이다. 미국에는 일이 있어서 그만 두지 못한다. 어쩌다보니 내 목구멍은 그렇게도 한국으로부터 멀리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 말처럼 나는 미국에서 꿋꿋이 잘 살거다. (이것은 나에게 하는 다짐) 


휴가차 한국에 있으니, 모든 게 무척이나 편안하고 편리하고 마음도 푸근하다. 이 곳에서 일을 하지 않아서 그런거겠지? 미국의 딱 두가지가 그립다면 그것은 자연과 여유로움이다. 이 둘을 빼면 한국이 훨씬 좋다. 재미지고, 시간도 술술간다. 미국에서는 시간이 여유롭다 못해 한없이 늘어진다. 아직 미국에서 나는 내 커뮤니티, 내 네트워크, 인맥, 사람들을 만들지 못했다. 가장 어려운 숙제다. 성인이 되어 딩크족으로 미국에서 '예민하게' 사니 그렇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의 결론은 '그러면 또 어떠한가'이다. 그 고독을 즐겨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미국에 돌아가도 매일 일기를 쓰고, 책도 읽자. 결국 글쟁이가 되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아니었던가. 목구멍 해결, 즉 생존 그 다음에는 자아실현. 외롭다면 그 시간을 자아실현으로 채워보리라! 더 이상 징징대기는 그만. 이것이 내 이번 한국행의 결론이다. 

미주 한인커뮤니티에서 말을 많이 들었던 '한국 딸기의 달콤함' 미국에선 절대 맛볼 수 없는 한국 딸기!

한국에서의 시간들은 마치 스타카토처럼 톡톡 끊기듯이 탁탁탁탁 빨리도 지나가 버린다. 한국에는 많은 그리운 얼굴들이 있다. 일차 가족인 엄마, 아빠, 형제와 조카들...... 이차 가족인 남편, 혈연만큼이나 소중한 친구들, 선배 언니들...... 사실 다 만나지도 못했다. 다 풀지못한 숙제같다. 잘 챙겨두었다가 다음에 오면 꼭 만나야지. 


원래 나의 2022년 1월 한국행은 작년 12월 26일 입국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한국 정부에서 갑자기 '해외 입국자 열흘 자가격리'를 못박았다. 삼주를 잡고 왔는데, 이 중에서 열흘을 자가격리 해야 한다니...... 그럴바엔 차라리 더 일찍 가서 휴가 날짜를 쓰더라도 자가 격리를 끝내버리자는 마음이 생겼다. 휴가 날짜를 박박 긁어서 왔다. 코로나가 내 삶의 곳곳을 보이지 않게 이리 저리 바꿔 놓았구나 싶다. 


오늘로부터 일주일 하고 하루가 지나면 다시 미국에서 출근하는 날이다. 오늘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이 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경험에 대한 후기. 한국에 살아도 한국의 빠른 변화를 따라 가지 못한다는데, 그런 환경에서 약 한 달을 보낸 내가 어떤 마음이 들었던가에 대한 글. 


딱 이 년만의 한국 방문이다. 그 이년 동안 미국에서의 내 삶은 준-자가격리스러운 삶이었다. 재택 근무를 일년 반 이상했고, 몸은 편안했지만 마음이 외로웠다. 또한 한국의 이 빠른 변화 속에서, 지난 나의 이 년을 되돌아보니 조금은 방부제스러운 삶이었다. 외부의 자극이 거의 없고, 혼자 때로는 내 삶이 무지막지하게 외롭다고 느꼈으며, 일-직장-장보기-식당-가끔 등산이 전부인 내 일상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심심하다. 미국이 그런 곳 같다 (뭘 해도 심심한 곳). 대신 한국은 바쁘고, 다이나믹하고, 재밌고, 신나고, 시간이 빨리 간다.  

미국에서의 지난 이 년은 남편이 없는 혼자만의 삶이어서 편하기도 했지만, 외롭기도 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다 가질 수 없다'는 것.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 나만 생각하는 편안한 삶은 없다. 남편과 같이 살면 '함께' 를 생각해야 해서 좀 불편하지만 안정감이 있고 외롭지 않다. 나 혼자 미국에 사니 나만 생각하면 되지만 뻐근한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그렇더라. 이것 저것 둘 다 갖고 싶은데, 그건 안된다. 이것을 가지면 저것을 내 줘야 한다. 한국에서 살면 뭔가가 재밌고, 빠르게 흘러가는 변화가 신나고, 갑자기 부자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반대로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즉 아파트를 사지 않아서) 벼락거지가 되기도 하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것 같아 보인다. 그 스릴을 즐기려면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럴 수 없다. 


한국에 오니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건 그동안 쌓아왔던 인연들과의 재회다. 그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니, 그래도 한국에서 살았던 내 시간들을 보상받은 기분이 든다. 예전의 한때를 공유했던 그들과의 재회,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만한 기쁨이 없었다. 사실 4인 가족 제한 때문에, 급하게 계획했던 제주도 여행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너무 한 곳에만 있다보니, 한국에 오면 여기 저기 마구 쏘다닐 줄 알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쏘다니며 콧바람을 쏘는 대신 사람들을 만났다. 수년 전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 다시 만나니 그래도 똑같은 마음이라 참 반갑더라. 다만 이십대에 만났던 우리의 대화는 '사십대 토크'가 되어 있었다. 집, 건강, 가족. 한국에서 이렇게 아파트 붐이 일었는지, 왜 나는 2022년에 알았을까? '벼락 거지'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한국에 살지도 않는 나는 왜 갑자기 그 단어가 팍팍 마음에 꽂히는지 알 수가 없다. 


본분 

결국, 멀리 있더라도, 내가 미국 땅에 살더라도, 내가 삶을 사는데 글쓰기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다음에 한국에 오더라도 꼭 다시 하고 싶은 것: 미국 살이에 비해 가성비가 좋은 것들, 음식들 


서울 구경 

*남대문과 명동 구경하기: 미국의 안경들은 이쁘지 않은데, 비싸다. 한국 안경점들이 많은 남대문에 가면 가격 비교도 되고 안경 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물건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재미났다. 특히나 오징어 게임 인형을 샀다. 2022년에 구매할 수 있는 한국 문화 상품! 그리고 덤으로 이 곳에서 먹을 수 있는 갈치조림과 만두 (가마솥 만두)는 가성비가 좋고, 사람 구경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갈치 식당에서 문쪽 가까이는 앉지 말자. 어찌나 사람들이 왔다갔다하고, 이 바쁜 한국 생활에서 문을 닫아주는 에티켓은 바라면 안된다. 

*남대문 갈치집: 희락 갈치. 사람들이 많아서 들어갔다. 갈치조림 일인분에 만원. 카흑! 미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식당의 생기! Vibrant! 

*명동 나이키: 나이키 문외한, 패션 테러리스트인 나는 모르지만 남편에게는 별천지였던 곳. 

*남대문 안경점: 미국 촌사람이 다 된 나는 '한국에서는 안경 맞추려면 굳이 안과에 갈 필요없이, 안경원에서 직접 시력 검사를 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걸 잊어버렸다가, 안과에 가서 비보험자라고 시력검사만 했는데 글쎄 십 삼만원을 청구하더라. 완벽하게 호구가 된 순간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안경원이 구세주라고 생각했는데, 안경원에서의 함정은 선글라스였다. 이상하게 선글라스 도수를 낮게 만들어줘서, 실제로 쓰니 너무 안보였다. 그래서 다시 해달라고 해서 했는데, 그건 또 너무 두껍고 머리가 아팠다. 

광장시장. 겨울인데도 손님용 의자에 전기를 연결해 따듯하게 해 놓았다. 이런 K-손재주가 놀라울 따름. '엉뜨' 단어도 새로 배웠다. 엉덩이가 뜨거워짐. 광장시장 의자는 엉뜨의자

*홍대 일대 구경하기: 홍대의 2030 젊은이들의 옷차림을 보니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얼마나 패션에 둔감한지를 느끼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렇게 입고 다니는 구나. 그리고 남편의 말대로 기성 세대들은 돈을 버느라 '힙하고 재미난 장소'를 모르는데, 2030 손님들이 많으면 그 공간에 대한 기대를 해 볼만 하다. 

*홍대 맛집: 연교 - 중식당인데, 만두가 아주 맛났다. 가성비가 좋다. 줄서서 먹는 곳이다. 평일 열 한시에 가면 된다. 꿔바우도 새콤달콤했다. 다음에도 홍대에 놀러가면 여기에 또 가도 좋을것 같다. 

*내 돈 주고라도 건강검진: 오 년에 한번은 수면 위, 대장 내시경을 받는 것이 좋은것 같다. 심리적으로도 '이제 이렇게 속 안이 깨끗하니' 이 힘으로 또 열심히 일해보자. 하는 희망찬 마음이 생기더라. 

-한국 코스코 둘러보기: 미국 코스코에 비해 더 내 구미를 당기는 제품들이 많았다. 꼭 사지 않더라도 한국 코스코를 둘러보니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이 곳을 자주 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질투가 나긴 했지만 말이다. 


*딘타오펑: 맛있더라. 대만 만두. 육즙이 쭈욱. 맛났다! 

*서점에서 시간 보내기: 서점에서 내 책이 나오는 날을 꿈꾸니 정신에 새싹이 돋더라. 

*종로 광장시장 구경하기: 한국의 전국민을 세대를 아울러 맛으로 통일할 수 있는 곳이 광장시장이 아닐까? 다만 줄서서 먹는다는 '닭강정'은 절대 먹지 말자. 이거 먹고 쓸개즙 없는 나는 화장실에 얼마나 많이 들락나락했던가. 

홍대 중국집 맛집 '연교'. 이 메뉴는 주문하면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단다. 약 25분. 
**이번에 못했으니 다음에라도 하고 싶은 것 

제주도 여행: 결국 못 갔으니, 다음에는 꼭 가자. 이제는 한국에 오면 추운 1월보다는 시월이나 구월이 좋을것 같다. 사실 아빠의 농한기를 생각해서 일월에 온 거였는데, 너무 춥더라. 움직이기가 쉽지 않더라. 


반면교사 : 이번엔 실패했으니, 다음에는 하지 말아야 할 것

-강남역엔 가지 말지어다: 미국 촌사람이 된 내가 감당하기 힘든 곳, 강남역. 사람이 너무 많고, 시외버스 타고 집에 가려다 4시간 걸려서 집에 왔다. 그 후로 강남역 기피증이 생겼다. 

-'미국에서 왔어요'라고 절대 말하지 말 것: 미용실이나 병원이나 어딜 가더라도 그렇게 말하지 말지어다. 호구 취급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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