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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순 Oct 10. 2021

콜롬버스 데이 삼일 연휴의 첫날

미주 혼밥 직장인의 휴식 

#삼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니까 내가 미국에서 나름 정년 퇴직금이 나오고, 남들에게 뭐라고 제대로 말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직장' (이렇게 구분하는 내 마음이 싫기도 하지만, 또 사실이기도 하고...... 참 노동시장은 사람을 착잡하게 만든다.)에 다닌 지 거의 삼년이 되어간다. 사실 산 하나를 넘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믿는 착각은 이제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고백하건데, 여기에 오기까지 혼자 나름 속앓이도 많이 했더랬다. 오죽 직장에 대한 큰 마음을 품었으면, 매일 미신처럼 '나는 연방 공무원이 된다'를 열 번씩 직접 타이핑을 했을까 싶다. 그랬던 산이었다. 이 산만 넘으면, 모오든 부귀 영화가 찾아오리라~~~. 하지만 그 산을 넘으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또 다른 어마 무시한 산이 터억 하니 내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현재로서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고, 이 시간들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다. 틈틈이 중간 중간에. 


만약 내가 운전에 대한 두려움, 타지에서 혼자 운전을 하며 여기 저기 쏘 다닐 수 있는 것에 대한 무한 긍정의 자세와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이 삼일의 휴일 첫날을 무턱대고 이렇게 도서관에서 보낼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 도서관은 언제나 좀 많이 소수자들이 가는 곳 같다. 그런데 이곳 처럼 조용한 곳이 흔치 않다. 이곳처럼 사람이 적은 곳이 흔치 않다. 그래서 오히려 더 더 좋다. 이민을 가고, 마음대로 여기 저기 다닐 수 없는 환경이 되고, 또 어쩌다보니 혼밥인이 되다 보니 휴식을 취하는 자세도 달라진 것 같다. 또 반대로 내가 진짜 원하는게 뭔지 날것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남편이 있었다면, 이런 휴일에는 분명 어디론가 갔을 것이다. 그는 훌륭한 운전자의 기질을 갖고 있다. 만약 남편과 계속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삶의 모양을 유지했더라면, 아마 나는 같이 '지지고 볶으면서' 여기 저기 구경을 하고 계절을 느꼈으려나...... 하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현재의 삶의 형태에도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지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투덜거리는 시간이 좀 있기 때문이다. '에이, 젠장. 남편과 같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나는 이 말줄임표인 점 여섯 개에 담긴 생각들: 예컨대 '같이 드라이브를 가고, 여행을 가거나, 카드빚을 생각하지 않고서 그냥 쇼핑을 마구 질러댄다거나, 그런 것들을 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내가 해 보지 못한 가정 상황에 대한 미련이다. 내가 갖지 못한 상황에 대한 미련이고 환타지다. 나는 이 미련한 생각, 미련함을 떨쳐 내버리고 몸을 다잡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곳 도서관에 토요일 오후 한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것이다. 


본연의 나, 진짜 나, 혹은 알맹이 같은 나

이 세 가지 단어의 다른 말은 '쓰는 나'일 것이다. 뭐라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서 여기에서 지금 그 꿈을 실현하고 있다. 거창한 표현이다. 그런데 사실 그냥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느날 이 세상에 사라진다면, 내게 남는 것은 나의 일기장과 그나마 이 곳에 써 놓은 글들이 아닐까. 이름있는 작가라면 원고 마감을 갖고서 열심히 쓰겠지만, 나는 아직은 그러지 못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럴지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행위는 중요하다. 내가 나 다워지기 위해서 쓰는 것. 일기를 쓸 때는 그저 아무런 여과없이 속의 것들을 날 것 그대로 마구 쏟아 버리지만, 이 곳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그래도 조금은 생각한다. 내 글을 읽는 이들에 대해서. 그닥 궁금할것 같진 않아도, 그래도 독자는 내 글을 읽으며 '해외로 이민간 한국인 여성의 삶과 생각'을 궁금해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쓴다. 글쓰기는 마치 계속 연마하는 작업 같다. 연마. 혼자서라도 연습하고 다루지 않으면, 무뎌지고, 잊혀지니까 말이다. 이 꿈을 이루려면 절대적으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나만의 공간'에 대한 강인한 의지와 이민자로서 '내 집 마련'에 대한 목마름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이곳의 집들을 좀 찾아 보았지만, 현재로서는 정지 상태다. 집은, 그러니까, 나의 오랜 직장이 될 수 있을것 같은 이 곳에서의 집들은, 좀 말이 안될 정도의 가격들을 과시한다. 또 집은 짐이 될 수 있다. 그냥 탈탈 마음의 미련들도 털어 버리고, 지금 여기를 즐기자. 도서관이라는 훌륭하고 돈이 안들면서도, 남들로 부터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공간과 시간속에서 이렇게 글도 쓰고 책 읽기라는 이제는 '어려운 행위'가 된 것들을 할 수 있게 된 나로서는 그냥 금상첨화다. 어찌 다 가질 수 있으리오. 


이민자에게는 거의 없는 사회생활 - 도서관에서 쫀득한 시간을 보내다. 

최근 일터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해외살이하면서 한인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거의 사람 만날 일이 없지 않나요. 그런데 저는 성인이 되어 미국에 왔는데, 딱히 종교가 없고, 그냥 불교에 가까운 무교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 만나자고 교회를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긴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나와 대화를 나누던 상대방 역시 이민을 온 한인이다. 그래서인지 내 말에 아주 적극 동조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해외에 살다보니, 참으로 마음 맞는 사람 만나기가 이토록 쉽지 않은 것인데, 얼마나 또 우리는 '적응의 동물'이냐면, 거기에 맞춰서 또 이렇게 도서관에 와서 글을 쓰면서 시간을 자알 보내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 인생은 '모 아니면 도'식이다. 가운데가 없다. 지독하게 해외에서 외롭게 살던가, 아니면 한국에서 복작거리는 틈새 속에서 가족 안에서 스트레스 받으면 살던가 이 둘 중의 하나 같다. 이래 살아도 쓴 맛은 있고, 저래 살아도 쓴 맛은 있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꾸역 꾸역 가야 한다. 

2021년 시월 가을인데도 이렇게 빨갛게 피워주었네! 

*이 글에 있는 사진과 글 내용의 저작권은 조소현에게 있습니다. 함부로 퍼가지 마시고, 인용 출처를 꼭 밝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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