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노자의 휴일
난 이 단어가 썩 마음에 든다. 외노자 : 해외에서 일하는 한인 노동자. 그러니까 이 단어에는 ‘이민자’ 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단절감, 고립감이 훨씬 적다. 해외에서 돈을 벌고, 언젠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무한한 믿음. 그 믿음이 허상이라 할 지라도 지금만큼은 효력이 있다. 외노자인 나의 휴일은 이렇게 건설적이게도 걷기와 글쓰기로 이뤄지고 있다. 이 글은 외노자의 평범한 휴일에 대한 글이다.
오늘 토요일 정오까지는 집에서 나오질 못했다. 금요일에 출근만했고, 큰 노동이 없는 휴식같은 근무일이었음에도 나의 몸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낮까지 그렇게 ‘피로에 절인 상태,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꼬박 출근 도장 다섯개를 찍고 나면 이 금요일밤에서 토요일 낮은 일종의 ‘블랙홀’시간이다. 이 블랙홀에 빠져서 아무것도 안하고 널부러져 있어야 재충전이 된다.
집안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마음이 단정치 못하게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널부러 지듯, 나를 닮은 내 공간도 그렇게 난장판이 된다. 다만 혼자사는 지금 나는 그 방종스러운 해방을 경험한다. 아무도 그런 나에 대해서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다. 남편의 2% 경멸도, 엄마의 잔소리도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휴식을 위해서는. 하지만 이것은 너무 큰 사치일까.
그렇게 널부러진 반나절이 길어지면 안된다. 블랙홀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블랙홀이 나를 잡아먹는 최악의 순간이 찾아온다. 무기력과 우울과 외로움과 고립감들…… 혼자사는 사람은 ‘방종을 즐길 여유와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접고 다시 사람답게, 생활다운 생활을 영위할 준비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관리 능력이 이런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밖으로 나왔다. 걷기 위해 자발적으로 집밖을 나서는건, 쉽지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외노자 조소현씨는 주중에 커피를 못마신다. 강제로 끊김을 당했다. 과거에 떼었던 쓸개, 그 안에 있는 쓸개즙이 그녀의 삶에 그토록 절실한 것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담석증으로 제거 수술을 한지 십년이 지났다. 그래서 ‘주중식습관’은 근무에 훼방을 놓으면 안되는, 자극이 적은 음식이어야 한다.
주중엔 일곱시 전에 출근 기상을 하는것, 그리고 이렇게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것. (기름진 음식, 자극적인 음식, 카페인 안되고 라면 안되고 튀김, 피자 안된다. 빈속엔 절대로 안됨.) 이 둘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되었다.
외노자는 외롭다. 하지만 외노자는 한노자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 에 비하면 그나마 좀 편한 조건일지도 모른다. 그중 뛰어난 장점은 미국에서 일할 경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잘릴’ 걱정은 없다는 것. 그래서 외노자는 홀로 외롭더라도 체력관리를 해가며 칠십이 될때까지 일하는 게 남는거다.
*외노자의 휴일을 더 풍요롭게 하려면 자전거를 타야 하는데, 차 뒤에 실을 해치 hatch 와 자전거 랙 (걸이) rack 이 필요함. 살곰살곰 돈을 모아보자! 이 살인적인 물가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