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저는 제 삶에 만족합니다.
우선, 이 글을 쓰게 동기 부여를 준 작가 최지은님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이 분은 무자녀에 대해 글을 쓰시고, 책도 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분이 메일링 서비스를 하시는데, 내가 메일링을 받아 보고 있고, 그런 글이 너무 고마워서 답장을 보냈더니, 거기에 답을 보내주셔서, 나는 지금 동기부여를 받고 몇자라도 이 주제에 대해 써 보고자 한다. 나의 '무자녀 삶'에 대하여 말이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무슨 죄를 지은 사람이 고백을 할 때, 시작할 것 같은 문장같아 보인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나의 자녀 없는 삶도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서른 초반에 결혼을 했고, 이민까지 오게 되었다. 해외 생활을 좀 해 본 나는 '그까이꺼 미국 생활'이라는 마음으로, 나름 깡을 먹고 미국으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깡은 광활한 오클라호마의 대지, 그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사막같은 삶, 그리고 그 사막 위에 뭔가라도 세워보고 싶은 척박한 마음에 비하면 모래 알갱이 같은 것이었다. 서른의 중반을 그곳에서 그렇게 보냈다.
또한 자녀는 두 사람이 만드는 법.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남편은 결혼하기 전에, 데이트를 할 때 지나가다가 스윽, 그런 식으로 말했다.
남편: "애는 없어도 괜찮아요. 뭐 그냥 둘이서만 잘 살아도 됩니다."
나: "아니, 그럼, 우리 노후는 누가 책임져 줍니까?"
나는 그런 본능적이고도, 솔직하고도, 뭔가 뻔뻔하면서도 이상한 이 질문을 했다. 아이가 마치 내 노후를 멋지게 장식해 줄 어떤 크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처럼 말이다.
남편: "요즘에는 다 돈이 대부분의 문제들을 해결해 줍니다."
남편의 이 말 역시 뭔가 되게 노골적이고 뻔뻔하다. 돈이 다 해결해 준다고? 그런 말이 어디있어? 자식은 자식이지. 자식의 부모에 대한 따듯한 사랑을 돈이 대체해 준다고? 나는 그런 마음이 삐쭉 삐쭉 올라왔지만,
'당신도 결혼하게 되면, 마음이 달라질 거에요'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당시, 데이트를 할 당시, 내 마음은 '반드시 아이가 있는 삶'을 원했느냐고? 그것도 사실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냥, 막연히.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그리고 그게 순리라고 하니까. 그리고 그런걸 안하면, 뭔가 미성숙해 보이니까. 뭔가 미완성된것 같으니까.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은 미국으로 이민오기 전, 비행기를 타기 전의 내 생각들이다.
미국에 왔더니
여기 미국땅에서 지금까지 약 팔년을 살았다. 그 팔년 동안, 나는 직업을 찾기 위해 (심적으로)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많이 겪었다. 이민자가 되어 보니, 돈만큼 중요한게 없더라. 경제적 안정만큼 기댈게 없더라. 나는 그런 이민자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남편은
"굳이 애가 없어도 되지만, 당신께서 굳이 원하신다면, 그거에 반대할 마음은 없소"
라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은근히 공을 내게 떠 넘기면서도, 뭔가
'아내인 너가 남편인 나로 인해 너가 손해보는 일은 없으면 좋겠어'
와 같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미지근한 물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나는 '아이없는 삶'은 살아갈 수 있어도 '직업 없는 삶, 경제적인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삶'은 못 살겠더라. 그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에잇, 이 스크루지 같은 인간이라고!'라고 누군가가 내게 작은 돌을 던진다면, 나는 그냥 돌을 안 맞고 묵묵히 땅을 보며 지나가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욕을 한들, 이것은 내 인생이고, 내 길입니다.
미국에서 딩크를 보는 시선들
움. 잘 모르겠다. 내가 미국에서 막, 미쿡인들처럼 쏼라 쏼라 거리면서, 사람들과 엄청난 수다를 떨며, 여기에서 사는게 아니다. 다만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을 때, 한 마음씨 고운 (그래서 지금도 매년 생일 카드를 주고 받는) 여선생님이 너무나 감사하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있다.
'너가 아이를 낳는다면, 너는 정말로 멋진 엄마가 될거야. 난 그걸 확신해!'
그녀의 그 확신이 담긴 말이 너무도 빛이 나고 아름다워서, 나는 그걸 지금도 마음 한쪽에 잘 간직하고 있다. 고마워. 날 그렇게 좋게 생각해 줘서 말이야. 그런데 아마 나는 조금 다른 형태로 나의 모성애를 실현하지 않을까 싶어. 한 인간을 잉태하여 낳고 기르는 건 안하겠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마음, 모성애 그런걸 '다른 사람에 대한 친절', '사람이 아닌 동물에 대한 무한한 모성애' 뭐 그런걸로 표현하지 않을까?
혹은 오클라호마에서 만났던 (당시에는 팔십대 중반이셨지만) 이제는 구십대 중반이 되신 할머니도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Any news about babies? (혹시 아가에 대한 소식은 없어?) 라고 수년 전에 통화를 할 때 가끔씩 물어본 적이 있는데, 내가 늘 감감 무소식이고, 별 말이 없으니 이제는 더이상 물어보지 않으신다.
그리고 나의 시부모님
시부모님께서는 내 마음을 잘 돌보아주시느라, 이 문제가 예민하다고 생각이 드시는지, 나한테 직접 '왜 손주를 만들지 않느냐'라거나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다. 심지어 우리에겐 나이차이가 좀 많이 나는 남편의 남동생네가 있는데, 거기는 우리보다 더 일찍 결혼을 했고, 벌써 자녀도 두 명을 생산한 전형적인 미국인 사인가족을 이루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뭔가 '사인 가족은 완전체'라는 포스터 이미지는 대부분의 국민 마음 속에 담겨져 있는것 같다. 시부모님께서는 집안 곳곳에 손자손녀의 아기 사진들로 채우고, 핸드폰에도 아기 사진으로 도배를 했을 지언정, 내 앞에서는 일부러라도 먼저 '에구구 내손주새끼'와 같은 말을 꺼내시지 않는다. 마치 두 분이 작정이라도 하신듯이 말이다. 아마 그런 조심스러움에는 '며느리인 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배려가 있는것 같다. 또 남편이 대놓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부모님, 우리는 원래부터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고, 그래서 아이를 가질 계획도 없어요."
라고 말이다. 교포는 비교포인의 눈에 때로는 외계인처럼 행동할 때가 종종 있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내게는 그것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게 고맙기도 했다. 맞다. 내게는 일종의 죄의식, 죄책감, 직무 유기한 것 같은 마음이 마음의 바닥에 출렁이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달콤한 건 해 놓고, 결혼을 해서 해야 할 책임이나 의무, 즉 2세 생산은 하지 않은 것" 에 대해 아무도 내게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목소리들은 내 안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자꾸 나를 괴롭히긴 했다. 이래도 되는걸까. 이게 맞는걸까. 나중에 후회할까. 이런 불안과 걱정들이 스멀스멀 늘 마음속 바닥에서 작은 벌레들처럼 기어 다니긴 했다.
벌레들의 종식, 그냥 내 자신이 되기
걱정과 근심의 벌레들을 종식시켰냐고? 모르겠다. 그래도 대부분 없어졌는데, 거기에는 사실 내가 만든 '연대하는 사람들'의 힘이 있다. 나는 그냥 내 속에 그런 조직을 혼자 만들어 놓았다. 그 조직에는 당연히 최근에 알게 된 이 최지은 작가님도 계시고, 또 한 일본인 여성이 쓴 '아이는 괜찮습니다'라는 책도 있다. 또 무엇보다도 지인들의 카톡 몇 글자(아이를 낳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단단한 의지를 담아서 해 주는 말들), 혹은 짧은 이삼주 한국행에서 만났던 친구의 한 마디(응, 나는 내 할일이 있고, 그래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할거야.) , 그리고 엄마의 조언(굳이 의무감으로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다.) 도 큰 힘이 되었다. 물론 나와 반대 혹은 대립각에 있는 분들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툭,툭, 치듯이 말을 던지기도 한다. '~씨는 언제 가족 계획을 가지시려나?' 하하하. 나는 그저 이제는 웃고 말지요다. 내게는 그런 여유와 힘이 있다.
https://lifewithout.stibee.com/ 최지은 작가님의 글을 읽어 볼 수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