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순 Sep 24. 2024

한국에 가는 마음 - 이민자에게 고국방문이란

미용실, 치과, 쇼핑, 사람들: 거리두기.

네. 한 열흘 정도면 한국에 가요.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지요? 그런 어떤 특별한 일이 생길 때만 뭔가 쓰고 싶은 마음이 샘솟네요. 습관적으로 자주 써야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한국에 가는 마음은 아주 오래된 외투를 드디어 벗어 던지는 기분입니다. 저는 이 낡고 오래된 외투 속에서 챗바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챗바퀴 일상에는 똑같은 일, 오르지 않는 월급, 한정된 이민자의 인맥, 오직 즐길 거라곤 자연뿐임, 그리고 짜장면도 한시간을 꼬박 운전해야 먹을 수 있는 현실이 있지요. 그래도 그 두껍고 무겁기만한 외투, 벗어버리고 싶은 외투는 제 일상입니다. 저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일상. 아마도 큰 일이 없는 한 이 외투는 이십년은 더 입을 생각입니다. 물가가 천정부지인 캘리포니아 주에 살기 때문에 늘 짠순이일 수 밖에 없지만요. 가늘고 길게, 만만디, 그것이 제 일 철학입니다. 사실 이 일을 찾기까지, 제 삶의 안정성을 얻기까지 참 고단했습니다. 그 물질적 안정성을 얻는데 꼬박 십년이 걸렸네요. 그런데 또 산 너머 산인지, 신은 내게 모든 걸 안준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올 것이 온 것인지, 저는 혼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작고 평화롭고 변화가 없는 곳이지요. 그런데 그곳이 어디든 그곳이 내 삶의 현장이 되면, 매일 그곳에서 살기 때문에, 이뻐 보여야 할것들이 전혀 그렇지가 않게되죠. 마치 내가 매일 어떤 멋진 연예인의 얼굴을 매일 보며 살다보면 그 얼굴이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 아름다움을 잊어버리듯이요.

거리 두기. 내 삶터에서 거리를 두려고 떠납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을 때 재충전을 하려고요. 그러면 제 이쁘고 소중한 일상이 더 이뻐 보이겠지요? 열흘 뒤, 열시간의 비행을 하고나면 인천공항일 겁니다.

한국에 가는 이유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또 무엇보다 한국에서 미용실도 가고, 치과도 가고, 안경도 새로 맞추려고요. 여기엔 없는 상점들 구경도 할겁니다. 무지, 올리브영. 이런 대명사를 나열하는 것도 작은 기쁨입이다.

그리고 또 맛집천국 한국에서 음식도 먹어보게요. 회도 먹고 싶고, 회 먹고 그 다음에 먹는 탕도 먹을 겁니다. 이름을 까먹었어요. 안 먹다보니까요. 또 가을이니까 전어도 먹고, 생선구이 집에도 가고, 조개하고 굴도 잔뜩 먹고 싶네요. 떡볶이도 먹어야죠. 순대, 치킨, 간짜장, 아구찜, 갈비탕! 해외에 살면 입맛은 자꾸 더 더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입맛뿐일까요. 사고방식도 옛날에 머물러 있겠죠.

제가 감사한 건, 그래도 건강하신 부모님 덕분에 휴가를 가족 돌봄의 시간으로 쓰지 않는다는거죠. 언젠가는 그런 시간이 저한테도 닥치겠지만, 그건 그냥 그때의 일입니다. 전 한국에 가면 경험을 하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하지 못하는 경험요. 꼭 한국에서 상영되는 찾기힘든 영화도 보고 (넷플릭스나 구글무비로 볼수 없는 영화들요), 미술관에 가서 그림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가서 그냥 막 돌아 다니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달랠수 있을겁니다. 또 저의 이십대 시절 소중한 사람과 덕수궁 돌담길도 막 걸었었습니다. 그때의 발걸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도 타국에서 나를 잘 잡아가면서 살수있는 이유도 그때의 인연들이 내게 준 좋은 말들, 에너지 그런것이거든요. 전 제가 만들어진 곳, 좀더 단단한 정체성을 만든 곳이 서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자기 중심을 만들어서 해외에 살기 때문에 큰 변형이 없이, 나를 잘 지키고 살 수있는 것 같아요. 정체성은 그래서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거기엔 사람들이 있었죠. 나와 비슷했던 사람들,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요. 물론 그들을 만나겠지만 이제 우리의 갈길이 많이 달라서 그 공기가 어색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전 그냥 그런 말이 좀 힘듭니다. “언제 한 번 미국에 가면 너희 집에 놀러갈게.” 미국 살이도 한국 살이처럼 힘들고 일상에 큰 여유가 없어요. 전 그냥 제 공간에 제가 있는게 좋아요. 제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입니까? 그래도 그냥 미움을 받겠지만 그냥 그렇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마음에 있지도 않는 웃음을 지으면서 허허거리며 ‘네, 오세요’라고 말하기는 너무 싫거든요. 그런데 그런식으로 대답하는 제 자신을 볼때가 있거든요. 그건 진짜 내 마음이 아닙니다.


쓰다보니 이런 결론이 되네요. 향수를 달래러 한국에 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민자에게 일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