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안녕히

by 달순

참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그래도 인생에서 남는 것, 의미있는 것 중에 하나가 글쓰기지 싶어서 다시 써 보기로 했다. 주제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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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Photo by Tim Mossholder on Unsplash

나는 올해 마흔 세살인데, 1951년생이신 아버지는 올해 일흔 네 살이시다. 한 달 전쯤 돌아가셨다. 삼월에 발병이 되었고, 육개월간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발병이 되었을 때, 한국에 들어가 삼주간 있었고, 돌아가셨다고 소식을 듣고 다시 한국에 들어가서 이주를 보내고 돌아왔다. 그렇게 한국을 방문했지만, 솔직히 아빠 침대 옆에서 간병을 하지는 않았다. 내 몸은 편했는데, 그 죄책감을 상쇄해 준건 사실 엄마 덕분이다. 아버지는 간병인 보험을 통해 간병인을 쓰기도 했고, 또 엄마가 간병인 대신 간병을 하기도 했다.

아빠에 대한 나의 슬픈 마음이 생기고, 운 건 주로 내가 사는 이 곳에서 이뤄졌다. 혼자 울게 되었고, 걷다가 울컥 울컥했다. 대부분 삼월 즈음에 그랬고, 급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날, 울었다. 울면서 기억이 났다. 어렸을 때 아빠가 내게 보여줬던 무한한 애정이 말이다.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살아났다. 아빠는 내게 좋은 아버지셨다. 그냥 딸이라는 내 존재가 되게 아빠한테는 무한정 좋았나보다. 어린 내 얼굴을 마구 부볐던 기억. 나는 아빠의 그 까슬까슬한 얼굴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 아빠의 얼굴에서 느껴졌던 담배 냄새 때문이었을까? 아버지가 나한테 준 가장 큰 선물은 그 얼굴 맞댐, 그리고 아빠는 나를 보면 무한정 좋다는 느낌을 담뿍 담아서 웃음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빠의 사랑이 내 뿌리를 만드는 데 큰 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내게는 뭔가 상황이 어려워도 무턱대고 긍정하는 힘 같은게 있다. (아직 세상의 쓴 맛을 못 봐서 철부지처럼 나대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내 내공의 텃밭의 거름은 아빠가 내게 준 사랑이다.

아빠는 이십대때부터 흡연을 하셨던것 같은데, 올해 초까지 흡연을 하셨다. 삼십년은 족히 넘는 시간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본인에게 폐암이 생기리라는 걸, 아빠는 그걸 받아들이는 데 힘들어하셨던 것 같다. 나라도 그럴것 같다.

삼월에 한국에 들어가기 전, 이곳 미국에 있는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해 줬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세요. 그래도 아빠 앞에서는 최대한 밝게 행동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단단하게 마음을 먹으라는 그 말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십대에 두 번째로 맞이하는 큰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고, 병실에 있는 아빠를 봤는데, 뭔가 그 큰 단어 '폐암'과는 달리, 아빠는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물론 항암을 하고 아빠의 폐 사진은 많이 나아지는것 처럼 보였다. 문제는 근육이었다. 일흔이 넘은 아빠의 몸에는 근육이 하나도 없고, 걸을 힘이 없으셨던것 같다. 휘청 휘척, 마치 다리를 바닥에 놓듯이, 어떨때는 고꾸라질것 처럼 걸으셨고, 점점 걷는 걸 힘들어하셨다.

아빠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는 (그것만이 아버지가 잘 하신 유일한 일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하니까 말이다.) 간병 보험에 든 것이다. 한 사람이 병상 생활을 하면, 다른 가족 중 누군가는 많은 책임을 지고 간병인이 되곤한다. 그리고 그 가족 간병인의 삶은 정말 너무한 삶이 된다. 삶 같지 않은 삶이 되고, 너무 많이 고달파진다.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그 슬픔도 있지만, 뭔가 이번 이 일이 아버지가 내게 '미리 공부하라'고 주는 예습지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다 끝을 맞이하는데,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아빠를 보면서 나도 아빠처럼 간병인 보험에 들고 싶고, 실손 보험에 들고 싶고, 암 보험에도 들고 싶다. 그런데 나는 그걸 다 못한다. 신분 문제 때문이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불안 때문이다. 내가 칠십대, 팔십대가 되었을때 이런 것들이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불안, 걱정이 무슨 도움이 될까. 아빠가 왠지 울상을 짓고 있는 내게 말하는것 같다. '쓸데없는 걱정일랑 덮어두고, 먼저 하루 하루 즐겁게, 재미나게 살아.' 그래서 나는 그러려고 노력중이다. 혼자 해외에 살지만, 오히려 여기에서 얻는 이 고요함과 조용함과 뭔가 이방인스러운 느낌이 더 많은 자유를 준다. 그러니 이렇게 퇴근하고 카페에 앉아 아빠의 돌아가심, 그것이 내게 주는 의미 같은 것을 생각하고 써 볼 수 있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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