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덴버 소재 박물관
몰리 브라운 여사의 생가를 방문하다
#타이타닉의 생존자 할머니 집이라고?!!!
콜로라도 덴버로 이사를 왔을때, 이 곳에 몰리 브라운이라는 할머니의 생가가 있다고 들었다. 몰리 브라운은 바로 그 유명한 영화 타이타닉의 여자 주인공의 실존 모델이라고 했다. 와우, 그런 엄청나게 유명한 할머니의 집이라고?!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어! 라고 다짐만 하다가, 일상에 파묻혀 살다보니 박물관과 참으로 멀어진 삶을 살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그래도 한번 사는 인생 여기 저기 다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드디어 들어가 보았다. 이름하여 몰리 브라운 박물관.
몰리 브라운은 실존 인물이여 영화 타이타닉의 모델이기도 했고, 그 밖에도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는 이 분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더 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의 가이드 분이 한 말에 의하면, 실존 인물의 생애와 작품에 드러난 인물의 성향은 너무도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 또한 브로드웨이나 할리우드에서 몰리 브라운을 작품화 했을 뿐, 이들이 몰리 브라운에게 주는 경제적 도움 역시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몰리 브라운 이라는 이름 역시 할리우드에서 부르기 좋기 위해 만든 것이며 이 사람이 실존했을때 불린 이름은 마가렛 브라운이라고 한다. 영화 타이타닉으로 나같은 한국인도 알게 된 이 할머니, 그리고 그 명성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 할머니 집을 찾는데 실존 인물과 많이 다르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 박물관 주소: 1340 Pennsylvania St, Denver, CO 80203
*콜로라도 주 덴버 시 다운타운에 위치함. 다운타운은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잘 찾으면 스트릿 파킹이 가능하고, 안되면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몰리 브라운 박물관에서 덴버 도서관, 덴버 아트 뮤지엄까지 도보 10분이면 가능하다.
#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몰리 브라운(Molly Brown, Margaret Brown)은 1867년에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모두 아일랜드 이민자들로 1800년대 중반에 미국 미주리로 오게 된다. 몰리 브라운은 13세까지 학교를 다녀서 8학년, 즉 고등학교 졸업장까지 있는 당시로서는 학식있는 여성이었다. 학업을 마친 후에는 담배 공장에서 일을 했다. 몰리 브라운의 태생과 유년기, 결혼 후 까지도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6명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좁은 집에서 컸다. 또한 그녀의 부모는 미주리에 살면서도 노예제에 반대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배경이 그녀가 일억천금을 얻는 부자가 된 뒤에도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주춤돌이 된게 아닐까한다. 1880년은 당시 미국의 운송 수단이 강에서 기차로 바뀌는 시기였다. 1886년, 19세가 된 몰리 브라운은 결혼할 남성을 찾을 겸 자신의 형제가 있는 레드빌Leadville 콜로라도로 향한다.
*몰리 브라운 박물관에서 보이는 교회: 아이리쉬 카톨릭 교회에 후원을 하기도 함. 이 교회가 박물관 현관 (몰리 브라운이 살았던 집이 현재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 에서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도 아름다운 이 붉은 벽돌집의 두 번째 주인이 바로 타이타닉 주인공의 실존 모델이었던 몰리 브라운과 그녀의 남편 제이제이다. 집 안에 들어가면 손님이 대기할 수 있는 작은 의자와 커튼이 있다. 이 곳에서 주인을 기다리면 주인이 위층에서 내려와 손님들을 맞이하거나, 혹은 맞이하기 싫으면 '오늘은 주인님께서 바쁘시다고 하니 다음에 오시랍니다.' 라고 손님을 돌려보내기도 했단다. 이 손님들이 주인을 만날 수 있게 되면 이 공간에서 벗어나 파를러 Parlor 응접실로 가게 된다.
응접실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성인에만 해당되었다. 이는 당시 빅토리안 사회의 풍습이라고 한다. 또한 빅토리안 사회의 문화는 동물 가죽을 인테리어에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자, 그럼 이 화려하고 볼 것 많고, 오늘날의 눈에도 비싸 보이는 이 집은 몰리 브라운이 샀을때 얼마였을까? 1894년에 이 집을 구매했을 때, 구매 가격이 $30,000 (삼만 불) 이었다. 그럼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 가족의 자녀였던 몰리 브라운은 어떻게해서 이렇게 갑부가 되었고, 어떻게 해서 그 유명하고 고급진 타이타닉 배에 승선하였을까?
답은 역시 금이다. 금광으로 때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던 1800년대 후반, 몰리의 남편 제이제이는 금을 발견하여 금광으로 어느 날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되었다. 또한 1893년에는 당시 정부가 그 전까지만해도 은Silver를 화폐 기준으로 삼았다가 그 기준을 은에서 금으로 바꿔버려, 은을 소유한 사람들이 파산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가이드는 여기에서 잠깐 제이제이와 몰리 브라운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당시로서는 결혼을 할 나이가 되고도 남은 19세 몰리 브라운은 부모의 조언에 따라 남자 형제가 있는 레드빌 콜로라도로 처음 오게 된다. 아이리쉬 교회 소풍에서 만난 남자가 제이제이인데 당시 제이제이는 가난했다. 그러나 9개월의 구혼 끝에 몰리와 제이제이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는다. 몰리 브라운은 6형제 자매의 장녀로서 부자 남편을 만나 자신의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고 한다. 자녀들의 이름은 래리와 캐서린 (헬렌). 그러나 결과적으로 몰리 브라운은 자신이 원하는 부를 성취한다. 이 부를 얻고 나서 그녀는 전세계를 여행하는데 세계 여행을 통해 사들인 물품, 소품들이 이 집안을 장식해 놓았다. 손님 대기실에 있는 이 동상 역시 인도에서 사들였다고 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콜로라도라는 곳에서 '우리가 돈만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소양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응접실 사진인데, 이 응접실 벽에 걸려있는 사진은 콜로라도 로키산을 그린 유화이며, 그 아래에 있는 검고 흰 접시는 몰리 브라운이 일본 여행에서 사 온 일본 접시라고 한다. 19세기에도 이토록 전세계를 유랑하며 쇼핑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부자였는지 상상이 간다.
*서재: 몰리 브라운은 총 6개국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독일어, 러시아어 등을 배웠으며 마지막에는 그리스어에도 도전하는 등, 학식에 대한 욕구가 대단했던것 같다. 또한 한번 파티를 하면 이 집에 약 800명의 손님들을 초대해서 가든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가이드 분이 옛날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 주기도 한다.
*이집트 여행후 파리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배는 타이타닉호: 아래 사진은 이집트로 여행을 간 몰리 브라운이다. 몰리 브라운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부모로서는 최고의 교육을 시켜주고 싶었으며 콜로라도보다 더욱 교육이 센 동부의 보딩 스쿨로 아들을 보내고, 딸은 프랑스 빠리에 있는 소르본 학교로 보낸다. 그리고 딸을 보러 가는 겸 이집트 여행을 하게 된다. 이때 우연히 점성술사가 "당신은 물로 인해 곤경에 빠질겁니다."라고 말을 해줬는데, 얼마나 용했는지 그가 말한 '물'이 바로 타이타닉 호의 침몰이었다. 딸과 함께 이집트 여행을 하던 중, 아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텔레그램을 친 아들은 "엄마, 내 아이가 심각하게 아프니 당장 내가 있는 여기 캘리포니아로 와 주세요. 급해요!" 라고 했다. 손자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되는대로 탄 배가 바로 타이타닉이었단다. 딸은 자신의 엄마가 타이타닉호를 탄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 역시 이 배를 탈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녀는 타지 않고 엄마만 탔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의 엄마가 탄 배가 무엇이었는지 몰랐다고 한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던 그 날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던 날 밤 11시 밤 경 몰리 브라운 여사는 책을 읽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갑판 위로 올라갔는데, 거기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다시 자신의 침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다 몇시간 뒤 선장이 모두 배에서 나가라고 하며, 몰리 브라운은 사람들에 휩쓸려 구명선 6호에 타게 된다. 그것이 마지막 구명배라고 한다. 아래 사진이 그녀가 탔던 배의 사진이며 이 배의 가장 뒤에 있는 선원은 "이제 우리들은 모두 얼어서 죽게 될거야."라는 절망적인 말만했다고 한다. 하지만 몰리 브라운 여사가 기지를 발휘해서 "손으로 배를 저읍시다. 이렇게 계속 움직이면 우리의 몸이 따듯해 질 수 있어요!" 라고 말하면서 계속 팔로 배를 젓게 했다고 한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은 700명의 생존자를 남긴다. 그리고 이 생존자 모임에서 몰리 브라운은 의장이 된다. 그녀가 의장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우선 6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는 점 그래서 생존자들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또한 일등급실 손님이었던 그녀는 2등급, 3등급실 손님에 대한 배려와 도움을 많이 줬다. 1등급실 손님은 이 배의 침몰로 인해 물건, 소지품을 잃어버리긴 했어도, 2등급, 3등급 손님들은 어쩌면 그들의 전재산을 다 잃었을 수 있으니,우리가 도와줘야 한다 는 것이 그녀의 취지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몰리 브라운 여사는 당시 만 불을 현금으로 성금 모음을 하는데 성공한다.
*미주리 주 브랜슨Branson에 가면 타이타닉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 가면 몰리 브라운 여사가 타이타닉 호의 선장에게 준 선물이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이는 손에 들어오는 작은 조각품인데, 몰리 브라운이 이집트 여행에서 산 기념품이자 타이타닉 호에서 유일하게 건진 소지품이라고 한다. 이 것을 몰리 브라운은 타이타닉 호 선장에게 선물로 준다.
*참고할 만한 영화 - Unsinkable Molly
*참고할 만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가라앉지 않는 몰리 브라운
Original Broadway Cast of 'The Unsinkable Molly Brown'
1960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제작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