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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Jun 14. 2021

지하철 빈 좌석에 모자를 올려놓는 사람의 심리

지하철 빈 좌석에 모자를 떡하니 얹어놓는 사람의 심리를 알지 못한다. 잔여 좌석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비어있는 좌석을 보고 새로 탑승한 승객이 기쁜 마음으로 다가온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얼마 안 가 자리를 차지한 모자를 발견한다. 가여운 이 사람은 주위를 우왕좌왕 거리며 제법 앉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지만 소용없다. 서성이는 사람을 본체만체하는 철옹성 여인의 내공을 감당하지 못한 그는 결국 다른 빈자리를 찾아 떠난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나는 이 진귀한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담아낸다. 라이벌을 말 한마디 없이 제압하는 그녀가 놀랍고도 흥미롭다.


몇 년 전, 엄마가 해준 우스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더운 여름날이었을 것이다. 지하철을 탔는데 마침 빈 좌석이 하나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웬 떡인가 싶어 기쁜 마음으로 앉을 채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앉은 사람이 이러는 거란다.


"바로 다음 역에 탈 사람이 앉을자리예요."

"네?"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우리가 언제부터 아직 타지도 않은 사람 좌석을 맡아주고 그랬단 말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너무나도 신박한 한마디에 할 말을 잃어버린 엄마는 도망치듯 다른 칸으로 가버렸다고 했. 가끔 우리는 왜 이렇게나 다른 건지에 대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결국 답이 나오질 않아, '뭐 그 사람도 그럴 사정이 있겠지.'하고 말아 버린다.


온갖 헤아릴 수 없는 요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이다. 모자를 위해 빈 좌석을 사수한 그녀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란 것이 있었까. 그래, 인간은 입체적이니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겠. 그럼에도 사람이 앉아야 할 좌석에 모자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입 꼭 다물고 방관한 나도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은 없는 거겠지.


어느 선까지 타인의 자유를 인정해줘야 하는가. 어찌 되었건 나도 결국에는 누군가의 자유를 침범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하차 역에 다다렀을 때, 한 여성에게 화를 내고 계신 어르신의 성난 목소리 들려왔다. 여성의 크로스백에는 여름날이 더운지 해맑게 헥헥거리는 강아지가 있었다. 힐끔힐끔 바쁘게 교차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과하며 혼란한 전철 칸을 허겁지겁 하차했다. 살다 보면 이런 하루도 있다.




사진출처: Unsplash (@Pablo E. Or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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