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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Dec 02. 2022

멈춰 서면 보이는 것들


요 며칠 코가 시큰하고 목이 싸하더니 결국 올게 와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비인후과를 들렀더니 코로나 양성이란다.


"키트 사진 찍으시겠어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묻는다.


"아..? 네"


전혀 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었지만 찍겠느냐는 물음에 나도 모르게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붉은 선이 찍찍 그어진 진단키트를 카메라에 담아낸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엄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나란 걱정이 앞섰다.


근래 들어 자유롭게 친구들도 만나며 바깥 생활을 서서히 늘려가던 참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잘 지켜낸 걸 보면 어쩌면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란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슬금슬금 빗장을 느슨하게 풀다 결국 사달이 났다.


엄마에게 연락을 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생들에게 연락을 돌린 것이었다. 프리랜서 업무 특성상 한 번 신뢰가 깨지면 일을 지속하기가 어려운데, 그런 이유로 최대한 내 쪽에서 수업을 미루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건강상으로 삐끗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스스로 정한 업무 규칙을 어겨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일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것 아니라 생각하기에 오히려 이번 기회에 푹 잘 쉬어나 두자라고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은 자가격리기간 동안 해야 할 일과 온갖 잡생각으로 가득 찼다.




최근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나의 마음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수많은 얼굴이 짜증스럽고 피곤해 보였다. 왕십리역에서 구걸하는 아주머니의 그 꾸준함이 고단해 보였매장 구석구석 조금씩 더러워지고 있는 40대 동네 카페 사장님의 씁쓸한 미소가 마음을 떫게 만들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는 마음의 온도에 따라 깨끗함을 달리하므로 지금 내 마음이 자꾸만 부정적인 것을 끌어들이는 것은 내 마음이 아래로 아래로, 저 깊은 아래로 침전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힘겨운 우리네 이웃의 삶이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하는 인류애적인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나 자신의 몸 상태가 악화되자 그저 어서 집으로 돌아가 지친 하루를 정리하고픈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하였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로 글 안에서 헤매고 싶지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항상 해왔던 일이지 않은가? 돌연 그것이 어려워진 것은 글쓰기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 무언가로 바뀌어버린 탓이지 않을까.




독자가 있기에 글이 있고 그러므로 글이란 읽어주는 이를 고려하여 작성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역시 나로서는 작가가 있고 그러 나서 독자가 있다는 방향으로 글쓰기에 접근하고 싶다.


결국 나다움을 찾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 글쓰기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므로 각자가 충실하게 자신의 글을 쓰는 세상을 응원한다. 읽는 이를 배려해서 쓰여진 글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인간이라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글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그런 이유로 오늘도 이런 글을 쓰고야 마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시작했는지도 모를, 흐르는 강물처럼 떠내려가는 글을 말이다.


그래도 코로나가 찾아온 덕분에 정말 여유롭게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멍을 때리다 글을 쓰고 있다. 어젯밤에는 이런 글을 쓰면 정말 좋겠다란 생각을 하며 잤는데 늘 그렇듯 오늘의 글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격리기간 동안에 이런저런 생각의 조각들을 올리며 순간을 기록하는 시간으로 채워나가기를 바란다. 그나저나 체력을 키우기 위해 줌바 클래스도 등록하고 보다 나은 글쓰기를 위하여 글쓰기 모임도 등록했는데 시작부터 삐그덕거리는 12월이다.


좀 삐그덕거리면 어떠한가.
 
오히려 멈춰 서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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