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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Dec 12. 2022

안팎으로 사랑하며, 다정하게 살아가자


집에 돌아오는 길,

아파트 단지 앞에 심어진 목련 나무를
멀거니 쳐다본다.


가지 끝마다 몽글몽글 꼬마전구 같은 것이 맺혀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자그마한 꽃망울이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있다. 봄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참으로 부지런하기도 하다. 올해는 유난히 포근한 겨울이어서 이러다 요 녀석들이 봄인 줄 알고 꽃을 피워버리는 건 아닌가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살이 베일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쓸모없는 고민이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늘 그랬듯 자연은 말없이 다가올 봄날을 준비한다. 나로서가슴팍을 매섭게 때리는 야속한 겨울바람에, 봄이 과연 올는지- 그런 싱거운 생각이 든다. 요즘은 모든 것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시선을 거둬 이웃 아파트 단지를 바라본다. 그곳에는 크리스마스 전구를 칭칭 감고 요란하게 번쩍이는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늘 그렇듯 법석을 떠는 연말이다.




12월이 되니 어찌 되었건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올해는 참으로 지난한 한 해였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데 그게 업이 되니 기분이 Up 되기는커녕 자꾸만 바닥을 쳤다. 그럴 만도 한 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철새처럼 옮겨 다니던 내가 처음으로 3년이 넘게 하나의 커리어로 우직하게 밥벌이로 해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4년 차가 되어가니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떠돌이 나그네 기질이 슬슬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해놓던 가닥이 있 냅다 팽개치고 어딘가로 갈 수도 없는 터였다.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해야 할 일을 끝마친 후 매일 밤 어두운 방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렇게 하루가, 한 달이 흘러갔다. 이따금 힘이 불끈 솟아오르기도 하였으나 맥없이 흩어지는 연탄재처럼 열정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당황스러웠다. 초반에는 이러한 상황이 마뜩잖아 인상을 팍 쓰기도 하였으나 언젠가부터 그마저도 지쳐버렸다. 주변을 보살필 여력이 도무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사람이 꽤나 퍽퍽해졌다. 모든 게 못마땅한 탓에 시니컬한 반응만 툭툭 튀어나올 뿐이었다.


비관적인 마음이 이렇게 그득하니 언짢은 일이 밭고랑의 잡초처럼 계속해서 자라났다. 못된 생각을 먹고 쑥쑥 자라난 것을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름 내내 하염없이 하기 싫은 마음을 노려보며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왔다. 그것이 2022년을 보낸 소회이다. 달리 할 말이 무엇이 있으랴. 그러나 12월이 되니 집 앞의 목련 나무처럼, 나 또한 자연의 법도대로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올해는 공연히 일어나지도 않은 일 걱하느라 소중한 날들을 허비했다. 불안한 마음이 가시가 되어 마음을 콕콕 찌를 때에도, 불안을 멈추기보다 오히려 박차를 가해 고민을 키다.


이런 가학적인 행동은 어쩌면 나로 살아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연중에 타인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그러나 이런다고 내가 다른 누군가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 자기 자신으로 밖에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엎치락 덮치락 뒤엉킨 생각을 껴안은 채로 2022년의 긴 우울의 터널을 지나왔다.


그러던 와중에 한 가지를 결심하게 되었다. 나로 살아갈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취약하고 찌질한 자신을 보듬어주기로 한 것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했다. 마음을 먹으니 전전긍긍했던 마음이 어딘가에 묶여 있지 않은 듯한 홀가분한 기분이다.




나란 인간은 항상 이런 식이다.

잊을만하면 우울의 바다에 온 몸을 내던지고
마지막 숨이 다하기 전에 스스로를 건져 올린다.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호흡법을 터득해 나간다. 더 깊이 내려가는 만큼, 깊은 인생의 맛느낄 수 있으리라.


긍정의 기운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 위에서 찰박거리는 물장구를 즐기는 요 며칠.


내년에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까.


이런 생각조차 무의미할만큼

한 치 앞을 모르겠는 것이 인생이다.


오늘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겨우내 꽃망울을 품고 있는 저 목련 나무처럼,


나 또한 인생의 무언가를

비밀스럽고 소중하게 품고 있을 뿐이다.


그 무언가가 어떤 것이 될지는

봄날이 오면 알 일이다.


그러니 삽질하는 기분이 들지라도

안팎으로 사랑하며 다정하게 살아가 보자.


봄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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