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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숲 Dec 26. 2022

소박하게 살고 싶다.

소박하게 살고 싶다.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최소한의 관계만을 유지하며 자연 속에서 살다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집에 들어오며 틀어놓았던 TV에는 자극적인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쩝쩝거리며 먹어대는 프로그램이 흘러나온다. 채널을 돌려 <한국인의 밥상>을 튼다. 노년의 부부가 소박한 자연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한다. 주름진 투박한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걸쳐있다. 그들의 밥상을 부럽게 바라보는 도시인의 식탁에는 기름기 넘쳐나는 음식이 놓여 있다. 그럼에도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빠르게 입으로 욱여넣다 보니 포만감이 자리 잡을 겨를이 없다. 곧바로 주변에 있는 과자를 뜯어 입 속으로 넣는다. 건강을 해치는 맛이 난다. 나는 정녕 소박하게 살고 싶은 걸까.


소로에게는 든든한 후견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곁에 있었. 그의 오두막 부지는 랄프로부터 지원받은 공간이었다. 나에게도 랄프 왈도 에머슨과 같은 사람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작게 한숨을 쉬다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든다. 누군가에게 기생하려는 욕망이 똬리를 틀 때마다 정신을 다잡는다. 나를 책임지는 것은 나 자신 이어야 한다. 랄프가 없었더라도 소로는 자연을 택했을 것이다. 아마 동굴 속에라도 들어갔을 것이다. 실행하지 못하는 인간 방법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다.


며칠 전에 만난 친구 A는 주변사람 중 가장 걱정 안 되는 사람이 나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늘 번잡함을 안고 사는 나로서는 꽤나 의외의 말이었다. 친구의 말을 들으며 사람의 마음이 용암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뭉근하게 흘러가는 용암은 모든 것을 녹여내는 파괴성을 갖고 있다. 겉으로 볼 땐 화산재가 덮여있어 그럭저럭 괜찮을 것만 같지만 용암은 자신의 길을 막는 모든 것을 가차 없이 처단한다.


꾸덕하면서도 파괴적인 내면이 늘 무서웠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봤자 어차피 사라질 것들 아닌가'라는 허무가 느릿하게 온 희망을 녹여버렸다. 나는 불안을 감지한 개처럼 낑낑거렸다.


© Scenic Relaxation, Volcano & Lava 4K (YouTube)


시니컬한 마음이 예고 없이 일상을 찾아와 마음을 뒤덮을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다.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숨 가쁜 삶이 아닌 영원한 안식으로. 씩씩한 미소를 짓다가도 허무한 마음이 들 때면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였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한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끝없이 돌덩이를 굴리는 시지프스처럼. 끊임없이 허무와 권태를 마주하며 인생의 불합리함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아마 소박한 삶 속에도 인생의 곤란함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다만 좀 더 가볍거나 얕은 기운으로 주변을 맴돌며 찰박거릴 테지. 삶의 무게란 태어난 순간부터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 생명을 갖고 태어난 모든 것들은 죽음을 맞이하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달려가는 길목 길목에 골치 아픈 일이 시시때때로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이 아닌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열심히 돈만 모으다 덜컥 병에 걸려 알지도 못하는 약물을 주입하삶을 꾸역꾸역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그것이 곧 닥칠 미래가 아닐 거라는 것을 알지만 누가 이를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내일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나는 가끔 저축한 돈 전부가 병원비로 쓰이는 오싹한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이 순간의 불안과 권태를 이기지 못해 자연으로 도망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자연과 함께하는 단순한 일상을 통해 가벼운 삶을 살고 싶은 건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은 이번달 글쓰기 모임에 나가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글을 쓰려고 신청한 모임이었는데 도망가고 싶어졌다. 이러는 나 자신에게 지칠 대로 지쳐버렸으나 이 몸뚱이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는 노릇이기에, 받아들였다. 이러면 또 어떠하고 저러면 또 어떠한가. 그저 도시를 뒤로하고 조금씩 가벼워지는 삶의 챕터를 열고 싶다. 그전까지 당분간은 도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박한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배워나가야겠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돌을 이쪽으로, 그리고 저쪽으로 굴리며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굴려보려 한다. 때가 되면 모든 일은 자연스레 일어날 것이다.


©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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