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가 많아졌다. 듬성듬성 모습을 보이던 몇 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굉장하구나 싶을 정도로 꽤나 많아졌다. 그런 탓에 자꾸만 거울 앞에서 머리를 뒤적이게 된다. 30대 중반이니 흰머리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려나. 지금의 속도라면 몽블랑처럼 머리가 하얘지는 건 시간문제겠군.
오래간만에 만난 지인은 점심식사를 하다가 대뜸 물었다.
"너는 머리 염색 안 해?"
"응? 나 매달하고 있는데?"
"엉? 너무 자주 하는 거 아냐?"
"..."
이 짧은 대화를 나누자마자 마음이 살짝 비뚤어졌다. 염색을 안 하면 안 한다고 한마디, 하면 또 너무 자주 한다고 한마디, 그래서 염색 주기를 늦추면 또 흰머리가 많다고 한마디.
어찌 되었건 누군가에게 한 마디를 들어야 하는 것이 인생인 걸까.
요즘은 왠지 사람과 투닥거리는 것도 피곤하다. 어중간한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좋은 인연과 그렇지 않은 인연은 손을 흔들고 헤어지는 순간에 진가를 발휘한다.
'안녕, 잘 가. 다음에 또 보자'하고 뒤돌아 서는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이 관계의 지속성을 결정한다.
자연스레 올라오는감정이고민하고 있는관계에 대한 결말을 알려준다. 떫은 감을 먹은 것처럼 뒷 맛이 아린 우리는 곧 헤어지겠구나, 마음이 포근해지는 이 사람과는 앞으로도 쭉 가겠구나를 생각하며 내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있는지를 알아차린다.
요즘의 나는 꽤나 단호한 면이 있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핸드폰을 확인한다던가, 자신이 약속에 늦어놓고 되려 성내는 사람에게나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 그런 형편없는 사람을 만나는 바보 천치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중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질질 끌려다니면서 자신을 무시하는 인연을 끊지 못하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 과거의 내가 그랬듯 말이다.
게다가 체력도 팍팍 떨어지는 통에 에너지를 잘배분할 수밖에 없어졌다. 죄송하지만 배려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정성을 쏟을 여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덕분에 쓸데없는 인간관계가 알아서 정리된다. 의미 없는 인맥에 집착하기보다는 고마운 사람에게 집중하는 지금이 좋다. 게다가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도 제법 달게 느껴진다. 이대로도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란,
인간은 자신의 잇속에 맞게 상황을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산다. 위생 장갑을 낀 식당 종업원처럼.
청결한 음식을 고객에게 서빙한다는 본연의 목적은 잊고, 손에 딱 붙는 장갑을 낀 채로 문고리와 핸드폰을 만지고 급기야 쓰레기통까지 정리하는 것이 제멋대로인 인간의 특성이다. 보다 못한 누군가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하면 울그락불그락해져서 버럭 성질을 내는 것이인간의 마음.
'내가 말이야 지금 장갑을 끼고 있는데 왜 난리야'라고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