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의 격투기 입문기, 덜컥 등록 못해도 괜찮아

by 달숲


격투기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으나, 파워 J는 역시나 덜컥 등록하지 못했다. 대신 INFJ의 방식대로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체육관 탐색전

1단계 : SNS 방문


인터넷으로 긁어모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모아 체육관 분위기를 먼저 파악했다. 낯가림 만렙에게 이건 필수 코스 인거죠. 체육관 SNS를 샅샅이 훑으며 ‘분위기는 어떤가, 사범님은 어떤 분일까’를 탐색해 보니 꽤 괜찮은 곳 같아 보였다.

<사범님의 첫인상>

- 짧은 스포츠머리

- 호쾌한 에너지

- 강인함


사범님은 운동에 진심인 듯했고, 에너지가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게다가 체육관은 코로나 시기를 버텨낸 연식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 왠지 괜찮을 것 같다.




체육관 탐색전

2단계 : 통화


1단계를 통과했으니 바로 2단계로 돌입. 체육관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막상 가면 기분이 쎄해도 후퇴하기 애매하니 목소리로 사범님을 더 알아가보고 싶었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렸을까. 태양의 에너지가 듬뿍 담긴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블로그 보고 연락드렸어요. 킥복싱이랑 주짓수를 배우고 싶어서요. 완전 초짜인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죠ㅎㅎ. 시간 날 때 한 번 오세요~"


"앗, 그럼 이번 주 목요일에 가도 될까요? 원데이 수업 먼저 들어보고 싶어서요."


"좋습니다! 그럼 목요일에 뵐게요~"


통화를 마치고 나니 밀려오는 안도감. 이게 뭐라고 떨린다니. 그래도 직접 사범님과 통화해 보니 정말 가봐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체육관 앞,

한참을 망설이다


어느덧 목요일. 몸은 여전히 무겁고 운동은 거들떠보기 싫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 게다가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비장하게 집 밖을 나섰건만 역시 처음은 긴장되서인지 체육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겨우 문을 열었다.


체육관에는 SNS 염탐을 통해 내적 친밀도가 쌓인 사범님이 있었다. 실제로 보니 훨씬 더 단단한 느낌. 강한 기세가 느껴져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했다. 어쩐지 다큐멘터리에서 본 맹수가 겹쳐 보였달까. 내 삶에 존재하지 않은 인간상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군살 없는 몸에서 단단한 기운이 풍겨졌다.


동물 이야기를 하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나는 어떤 동물 닮았어?”


귀여운 코알라나 다람쥐를 기대했건만 엄마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는... 바다사자.


그래. 나도 나름 맹수다. 바다사자도 사자긴 하니까. 어쩌면 같은 맹수(?)로서 사범님에게 잘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대망의 첫 수업,

근데 1대 1이라고요?


어색하게 회원 등록을 마치고 체육관 구석에 쭈뼛거리며 서 있었는데 수업이 곧바로 시작된단다. 킥복싱 글러브를 끼고 오라고 하셔서 글러브를 꼼지락 거리며 다른 회원들을 기다리는데 아무도 오질 않는다.


혹시 나 혼자...?!


알고 보니 휴가철이라 다른 회원들은 오늘 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아.. 둘은 좀 어색한데. 무거운 마음으로 사범님과 1:1 수업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불편한 마음도 잠시, 시작하자마자 줄넘기를 시키는데 숨이 가빠오고 몸은 삐걱거린다.


게다가 사범님이 알려주는 동작은 전부 어려운 암호처럼 느껴진다. 눈으로 볼 땐 알겠는데 내 몸뚱이로 하려니 자꾸만 꼬인다. 사범님 표정을 쓱 훑어보니 참을 인(忍)을 천 번 만 번 새겨 넣은 듯하다.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쩐지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망진창일지라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 내가 썩 마음에 들기도 했고 땀이 흐르니 머리가 맑아졌다. 사범님은 불필요한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오직 운동만 진지하게 가르쳐주신다. 덕분에 나 또한 몰입이 되어 잡념이 싹 사라졌다.

운동이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이야.


1시간이 후다닥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났다. 바닥에 널브러져서 헥헥거리는 나를 보며 사범님이 씩 웃으며 말하신다.


“그래도 잘 따라 하시는데요~?”


이건 진심일까 아님 립서비스 일까. 어찌 되었건 오래간만에 땀을 빼니 기분이 좋았고, 사범님도 격투기도 모두 잘 맞는 듯하여 그 자리에서 1개월치를 등록했다.



어쩌면 운동이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몰라


집에 돌아오는 길, 뺨을 스치는 바람이 유난히 상쾌했다. 격투기가 앞으로 내 삶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분. 오랫동안 멈춰있던 배가 침묵을 깨고 드디어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생각,


앞으로 운동이 내 인생을 살리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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