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복싱이 좋아요.
아니, 못한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힘든 일이 생기면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건 손에 꼽을 정도고, 속엣말을 한 다음에는 대부분 후회하기에 웬만하면 혼자 해결하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그래왔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입도 바위처럼 무거워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을 하고 싶기는 한데 할 말이 너무 많아 도리어 벙어리가 되어버린달까. 그렇게 내뱉지 못한 말은 마음 속에 쌓이고 또 쌓인다. 이렇게 가족에게도 말 못 하는 고민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한 번은 터지게 되어 있다.
그동안의 번아웃과 수차례 퇴사가 이를 입증한다.
그래서인지 아무렇지 않게 자기 속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 저런 부분은 어쩐지 닮고 싶다고 느꼈기에 몇 번이고 따라 해보려 했지만 성격이란 게 내 입맛대로 바뀌는 것이 아니더라. 결국 바윗장처럼 다시 입이 꾹 닫히곤 했다.
나처럼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꼭
킥복싱을 권하고 싶다.
글러브를 끼고
원투 구호에 맞춰 잽과 훅을 날리다 보면
기분 좋은 땀방울이 흐르고
몸은 놀랍도록 가벼워진다.
안개처럼 뿌옇게 시야를 가렸던 일상의 문제들이 서서히 걷히고, 그 뒤로 맑고 선명한 '지금'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순간 집중해야 할 것은
지금 날리는 펀치와
다음에 이어질 킥뿐이다.
킥복싱과 춤은 닮은 점이 참 많다.
하나 둘, 하나 둘
입으로 박자를 곱씹으며
손발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그리고 두 사람의 스텝과 동작이 엉켜서
하나의 예술을 만드는 탱고처럼,
킥복싱도 상대방의 펀치와 킥에 몰입하며
살아있는 흐름을 만들어 간다.
순간의 힘과 유연함이 만나
그날의 리듬을 탄생시킨다.
그 리듬 속에서 하나 되는
몸과 마음.
공격과 방어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나를 찾아온다.
오롯이 이 순간에 머무르기에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다.
찰나의 순간,
걱정은 우선순위 저 멀리로 밀려나고
시끄럽게 떠들던 자아는 고요를 되찾는다.
잡생각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기분이었나-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늘 발걸음이 가볍다.
아무런 해답을 얻지 못했는데도
두 손에 어쩐지
해결의 실마리를 쥔 듯한 기분이 든다.
스텝이 꼬이는 순간마저
탱고라 하지 않던가
나에게 킥복싱은 꼬여버린 삶마저
괜찮은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멋진 루틴이 되었다.
어설픈 펀치와 킥이지만
여전히 킥복싱을 즐기듯,
지금 헤매는 모습 그대로도
인생을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엄해 보이는 사범님이 가끔 던져주는
“좀 늘었는데요?”라는 말처럼,
나의 삶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지도.
스텝이 꼬여도, 숨이 가빠도
그 순간을 즐길 줄 안다면
멋들어진 춤이 된다.
킥복싱이 내게 가르쳐준 건
원투 훅뿐만 아니라
잔뜩 꼬인 마음과 엉켜있는 삶조차
품고 나아갈 수 있다는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