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주짓수는 처음이지?

by 달숲

어떻게 주짓수를 시작하게 되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은 ‘공짜 도복’이었다.


3개월 반을 등록하면 10만원 상당의 도복을 무료로 준다기에 덜컥 등록해 버렸다. 하여튼 뒷생각 안 하고 저지르는 건 알아줘야 한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체육관 바닥을 열심히 굴러다닐 운명이 되었다.


대체 도복이 어떻길래 마음이 동했던 걸까?


글쎄... 검정 도복이 주는 강인함에 끌렸다.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보디가드 같은 느낌을 받았달까. 이걸 입으면 멋진 으른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주짓수에 입문하게 되었다. 주짓수 마니아들이 들으면 경악할 동기지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직접 배워보니
도복만 멋있는게 아니더라구요.


수업이 시작되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사범님 주변에 원을 그리며 모인다. 그 모습이 꼭 대장에게 모여드는 늑대 무리 같다. 이 멋진 무리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괜히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했다. 물론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용맹한 늑대보다는…


아마도 이런 느낌?


사람들의 허리에는 파란색, 보라색 등 알록달록한 벨트가 묶여 있다. 다년간 갈고닦은 실력이겠지. 그래서 그런지 사범님의 설명에 모두 끄덕끄덕, 다들 잘 이해한 듯하다. 역시 오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왕초보 수련생 나 혼자인 듯하다.


그러나 그룹 수업의 특성상 초급자 레벨에 맞춰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주짓수를 시작한 초심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나 역시 처음엔 매번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지만 이상하게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주짓수가 의외로 매력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묘하게 하면 할수록 빠져든다.


처음엔 사범님의 시범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고, 순서도 뒤죽박죽. 아예 감을 잡지 못해서 좌절 또 좌절이었다. 특히나 어려운 기술을 가르쳐 주신 다음에, "이거 어려운 거 아닙니다~ 쉽게 다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실 때면 나는 이 쉬운것도 못하고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인가 싶어서 기운이 쭉 빠지기도 했다.


사범님의 "참 쉽죠?" 한마디에 나의 표정은 ^^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고수님들. 어찌나 친절하신지 이해하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해 주셔서 어려운 기술도 요령을 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어설프게나마 기술이 먹히니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애벌레의 꿈틀림처럼 엉성미가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막막했던 것을 헤쳐나가며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점에서 주짓수는 참 매력 있는 운동이다.


물론 재밌어도 가기 싫은 날이 있기 마련이다. 어제가 딱 그랬다. 억지로 몸을 끌고 나왔는데 유난히 오늘따라 사람이 더 많아 보이고, 다들 잘하는 것 같아 괜히 구석에서 기가 죽어 있었다. 게다가 요즘들어 복잡한 기술을 가르치는 얄궂은 사범님.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마음은 다잡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수밖에. 다행히 좋은 파트너를 만나 오늘 수업도 무사히 마쳤다.


돌이켜보면 주짓수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것 같다.


새로 배우는 기술은 지레 포기하고 싶지만 그런 마음을 접고 주위를 돌아보면 도움을 주는 손길이 상냥하게 길을 안내해 준다.


요즘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아서 두 손 두 발 들고 포기하고 싶 때가 많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고, 마음은 복잡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와르르 무너지고 싶다.


그럼에도 탱하며 나아가는 이유는 어디선가 나를 보듬는 손길이 나타나 다정하게 삶을 어루만져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자기 삶에 나타난 주짓수가 나에게 그런 확신을 주고 있다. 는 잘 헤쳐나갈 거라고. 그러니 믿고 나아가 보라고.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가볍다. 시원해진 바람결을 보아하니 가을이 오려나보다. 뚝딱거리며 허둥댄 하루였지만 그래도 잘 버텼다.


아마 당분간은 쭉 주짓수를 해나갈 듯하다. 격투기와 함께하는 앞으로의 삶이 어떤 궤도를 그려 나갈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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