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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의 삶, 운명아 와라!

by 달숲


단 하나의 삶


매주 여의도로 아침 수업을 간다. 멀끔하게 수트를 차려입은 샐러리맨과 보폭을 맞추며 걷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느덧 프리랜서 6년차)


엄마는 모든 인생이 어딘가에 이미 쓰여있어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무한대의 가능성이 아닌, 단 하나의 가능성만 있는 삶. 그건 너무 허무한 거 아니냐고 대꾸했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지금 주어진 삶이 거부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라는 말일테니.




폭풍 같았던 아침 버스


아침 버스는 오늘도 만원이다. 이렇게나 타인과 밀착 수 있다니. 북유럽은 사람 간의 거리 시한다던데 핀란드 사람이 서울에서 출퇴근하면 놀라 자빠지겠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목 주변이 싸하다. 어제부터 목 통증이 거슬리기 시작했는데 어째 더 나빠진 듯하다.


예민지수가 꿈틀거릴 기미가 보이면 클래식을 듣는다. 오늘의 선곡은 베토벤의 템페스트. 뺨을 후려치는 강풍과 바위를 내리치는 파도가 머릿속에 절로 그려지는 곡다. 폭풍 같은 선율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지금, 출근길 만원 버스는 더 이상 문제시 되지 않는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옆 남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옆에서 고개를 심하게 퉁기는 중년의 아저씨는

틱이 있는 듯하다.


오른쪽으로 한번, 위아래로 두 번.


'아니오 네 네'를 연상케 하는 반복적인 움직임. 모습에 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턱밑에 손을 살포시 대어 놓고 생각해 보니 아하! 지휘자의 제스처였다.


나의 클래식이 그에게도 들리는 걸까? 클라이맥스에 접어들 그는 강렬하게 더욱 강렬하게 움직였다.


내 옆에서 무한 고개를 끄덕이는 아저씨와 마포대교를 지나가는 것도, 이 또한 엄마가 말한 운명의 책자에 적혀있다는 말인가. 생각이 거기에 닿자 피식- 비실거리는 웃음이 터졌다. 모든 게 정말 다 정해져 있다면 불만에 가득 차서 일일이 반응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히려 '운명아. 와라!' 말하며 호쾌하게 받아들이는 게 낫지.


그러니, 후자를 택하자. 그러기로 했다. 베토벤의 템페스트가 그러라고, 출근길에 만난 지휘자 아저씨가 그래도 된다고 알려주는 듯 하니 오냐 한 번 그래보자.


오늘을 포옥 안아줄 테다. 내일은 다음 페이지에 쓰여있으니 어차피 곧 만날 놈이다. 그러니 다가올 미래일랑 무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자. 렇다고 또 너무 애쓰지는 말고.


그렇게 주어진 운명에 끄덕이며 운명의 책자, 그 끝 페이지까지 나아가보자. 운명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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