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을 돌아보며
새해 목표를 잘 세우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과거를 돌이켜 봐도 어차피 세워봤자 작심삼일게 뻔하고 다른 일에 치여 흐지부지되면 나는 왜 이럴까를 연발하며 자책만 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저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일과 문제에 집중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내 삶의 큰 틀이자 목표라면 목표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해가 갈수록 사는 건 더 바빠지고 머릿속은 헝클어진 수세미 같아져 더 이상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일 공간이 없었다. 마음과 몸은 말라비틀어진 무말랭이처럼 진기도 없고 윤기도 없었다. 집안정리는 죽자고 달려들면서 정작 내 머릿속 정리는 잘하지 못했다.
2023년 가을 '브런치 글쓰기'는 이런 내게 변화를 주었고 거기서 만난 슬기롭고 아름다운 동기들은 더 이상 물을 끌어올리지 않아 뚜껑 덮인 지 오래된 내 우물을 펌프질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고 금이 가면서 나를 끄집어내고 싶어 졌고 드디어 2024년 새해 목표를 세웠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획서를 만들었다. 거창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 더 나아간 아주 소소한 목표들이었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조금 일찍 자기, 책 한 달에 몇 권 읽기, 아이와 한 달에 한 번 영화 보러 가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 목표들을 아우르는 큰 제목은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삶 살기"라 정했다.
어렸을 때, '나는 누구일까, 왜 여기에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무엇을 하려고 이 세상에 왔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 물음에 드는 생각은 그냥 남들도 나처럼 똑같이 살고 있고, 나도 그중의 일부라는 것뿐 신통한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그 문제에 더 천착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나 예전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결혼과 육아로 나 이외의 것에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졌기에 그런 한가하고 재미없고 정답 없는 질문에 답을 찾고 다닐 여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물음을 하는 게 의미 없고 바보처럼 느껴졌다.
2024년 변화와 성장을 위한 첫 번째 시도로 작성한 계획서에서 중요한 화두는 '나 자신'이었다. 나를 돌아보고 지금 내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싶었다. 10가지 정도의 목표를 세웠지만 당장 모두 실행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은 차차 해 나가기로 했다. 먼저 내가 어떤 모습인지 알기 위한 마음 정리가 필요했다. 내 나름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진짜 '나'는 저만치 떨어져 현실의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방인처럼 주변을 맴도는 나를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1월은 마음 정리를 했다. 지금도 정리 중이고 아마 마음 정리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예전에 힘들게 답을 찾던 내 시답잖은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 하나를 근래에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답은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기를 돌리거나 세탁기에 빨래를 던져 넣으면서, 다음 끼니에 아이 반찬으로 뭘 할까 머리를 쥐어 짜낼 때나 남편과의 싸움이 연장전일 때와 같은 별 볼 일 없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었다.
문제는 그동안 대단할 것 없는 이 자연스러운 일상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내 삶 속에서 굴러가고 있었으면서도 답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얻은 답 하나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였다.
내가 무슨 철학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철학을 좋아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나, 다만 그저 아주 오래전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웠던 그 말이 갑자기 떠올랐고 이어 어두웠던 눈앞에 희미한 전구 하나가 켜진 느낌을 받았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기 위해 하는 일련의 생각들, 이 모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고, 이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참이라는 것이었다.
음식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존재하게 하지만, 진짜 사람을 존재하게 하는 건 사고의 힘이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사람은 생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후사정이야 어찌 됐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이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는 충분하다는 1차 결론을 얻었다.
주어진 삶 속에서 생각하고 살다 보면 또 다른 답을 얻게 될 것이라는 답도 덤으로 얻었다.
두 번째 답은 오늘 아침 아주 가벼운 대화 속에서 얻었다.
방학이라 늦게 일어나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를 하는 아이에게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00야, 사람은 왜 존재하는 걸까?
"태어났으니까."
"너는 어느 때 네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느껴?"
"유튜브 볼 때."
"......"
"엄마는 배고플 때, 졸릴 때."
내 대답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이는 만화책을 읽느라 대꾸가 없다.
"허, 그러네. 인간이 존재하고 존재하는 이유가 별거 아니네."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운 문제를 뭘 그리 심오하게 생각하고 답을 찾느라 고민했을까.
우리 집에 중딩 철학자가 살고 있였구나.
지금 내 모습은 과거의 내가 만들었다. 지나간 것에 미련을 갖거나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미래의 내 모습은 현재의 내가 만들어 간다. 때문에 2024년 올해 세운 목표가 내가 꿈꾸는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비록 지난 1월은 완벽한 1월은 아니었어도 나를 돌아보고 찾아나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내게 힘이 되는 책도 선물했고, 매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애썼다. 감정이 들쭉날쭉한 나를 마주하느라 가족에게 힘든 순간을 던져 준 때도 있었지만 더 이상 자책하지 않으려고 한다. 2월에는 전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남편과 아이를 대하고 싶다. 부드러운 말투와 평정심 유지를 위해 마음속 방정리와 더불어 일찍 자는 것을 더 실천하고 스트레칭과 걷기로 몸을 돌보는 시간도 꾸준히 챙겨보려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패키지로 묶어서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빼먹지 않고 실행하기 위해 시간을 확보해야겠다. 이제 열두 달 중 한 달이 지나고 열한 달이 남았다. 빠르게 지나갔지만 그래도 잃어버린 나를 찾는 시간이었기에 가장 큰 것을 해낸 기분이다. 앞으로 열한 달이나 남았다. 새싹에 조금씩 조금씩 물 주듯이 한 달 한 달을 소중히 보내고 싶다.
완벽하게 하려고 조바심 내지 말고
다 해내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지 말고
조급해하며 서두르지도 말고
달팽이처럼 천천히 가보련다.
달팽이가 지나간 곳처럼
내가 걸어간 곳에 흔적이 놓이면
그것이 곧 나이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일테니.
처음으로 설레는 2월을 맞이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