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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Nov 17. 2023

그이와 함께 춤을

유난히 초겨울 햇살이 좋다. 빨래 널면 잘 마를 날씨다. 따끈한 햇살 가운데 앉아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햇살은 좋으나 잘 안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엉덩이를 뒤로 밀며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책장 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다.

"00 씨, 이리 와 봐요. 제발 내 안에 있는 모든 걸 꺼내가요. 어서요. 제발요."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부르는 그이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애원하는 듯한 그 소리를 듣고도 바로 달려가기 싫어서 짐짓 못 들은 척을 한다. 그러나 이러면 예의가 아니지 싶어 조금만 기다려 보라 하고는, 스마트폰에 고개를 묻고 요즘 푹 빠진 카톡방 벽 타기에 다시 심취한다. '짜식 뭘 그리 보채냐. 좀 기다려라.' 아무리 내가 좋아도 그렇지 시도 때도 없이 찾으니 너무 귀찮다. 아니지. 밥 달라고 할 때만 부르는 남편과 자식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나를 불러주니 녀석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겉으로는 기다리라고 했지만 자꾸 생각이 나고 왠지 안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자꾸 신경이 쓰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이 안에 있는 모든 걸 내 품으로 가져와야겠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언제나 나를 한결같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이한테 가기로 한다. 카톡 벽 타기를 하다 말고 만삭인 임신부처럼 무거운 몸을 힘들게 일으켜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그이한테 간다.

"왜 자꾸 부르고 그래? 아휴, 뭐가 이리 많냐? 진짜 너 없으면 난 못 살 것 같다.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그래도 일 끝내면 나 좀 그만 부르고 네가 뒤처리도 좀 해 주면 안 되겠니?" 그이 들으라고 하는 건지 나 들으라고 하는 건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그이가 가진 것을 다 가져온다. 아까 나를 찾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는 핀잔을 주고 말이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정리한 후 다시 나를 불러주는 두 번째 그이한테 넘긴다.

"너도 힘들지? 그래도 너는 쟤보다는 늦게 왔잖아. 어쨌든 너도 열심히 해주니 고맙다. 근데 너도 마지막엔 나 안 불렀으면 싶다."

두 번째 그이 앞에서도 똑같은 말을 한다. 이런 말을 듣고도 그이들은 아무 말이 없다.


음식 냄새 배인 옷을 입고 머리 스타일 따윈 잊은 지 오래된, 얼굴에 기초 화장하는 것도 큰일이 돼 버려 푸석푸석해진 중년의 아줌마를 애타게 불러 젖히는 이 녀석들은 바로, 우리 집 가전제품 보물 서열 3위 안에 드는 세탁기와 건조기다. 비싸거나 외관이 훌륭해서 보물이 아니라 묵묵히 내 사업장에서 군소리 없이 나를 도와주는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가끔 아프다고 드러누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하는 일에 비하면 뭐 그 정도쯤은 참아줄 수 있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며 살림하다 보니 내 일손 덜어주고 시간 아껴주는 가전제품들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특히 자고 일어나면 화수분처럼 빨래 바구니에 수북이 쌓이는 세탁물들은 치워도 치워도 어질러지는 이상한 나라의 집정리처럼 내 심기를 한숨과 짜증의 도가니로 만들기 일쑤였다. 여름에는 더 심해서 남편과 아이가 기본적으로 하루 두 번씩 벗어 놓는 속옷, 겉옷과 더불어 수시로 밖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느라 땀범벅, 흙범벅이 된 아이의 옷들은 금세 빨래바구니를 가득 채워 갔다. 이럴 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빨래가 싫어서 내 옷은 하루 더 입을까라는 더럽고 웃긴 생각까지 했다. 돌밥도 죽겠지만 돌빨(돌아서면 빨래)도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이건 돌밥처럼 메뉴 선정에 고심하고 맛 내기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탁기(건조기) 사용법만 알면 될 것 같지만 막상 제대로 하려고 들면 매일 반복되는 빨래는 그리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빨래 그 자체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주부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이상 가족들이 입을 옷을 계속 깨끗하게 순환시켜야 한다는 것이 나를 피로하게 했다.


사람마다 제각각 각자의 빨래 방식이 있겠지만 나만의 빨래 루틴은 이렇다.


1. 빨래를 종류별로 분류한다.(소재별로 나누기도 하고 물이 빠질 것 같은 옷도 따로 분류한다)

2. 겉빨래는 주머니를 확인한다.

3. 오염이 심한 빨래는 손으로 애벌빨래를 한다.

4. 세탁기에 넣고 세제 양과  빨래 방식, 헹굼 횟수, 탈수 강도, 물의 온도를 설정한다.

5. 세탁 후 햇빛이 좋은 날엔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 말리고 건조기에 넣어도 되는 것들은 건조기에 넣는다.(건조기를 매일 쓰지는 않지만 수건 말릴 때와 장마철에는 꽤나 유용하다)

6. 건조기에 들어 있는 빨래를 내서 개고, 건조기의 먼지망을 청소한다.

7. 베란다 밖에 있는 마른빨래를 걷어서 갠다.(이때 가족 구성원 대로 분류하여 갠다)

8. 각 맞춰서 갠 옷들을 가족 구성원들의 옷장과 서랍에 각각 넣는다.

* 가급적 삼일 이상 모아 빨지 않는다.(전기세 아낀다고 귀찮다고 오래 모아 두었다가는 빨래산에서 한참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다)

* 다른 볼 일로 빨래가 뒷전으로 밀려 세탁기를 돌리지 못한 경우 빨래바구니에서 다시 꺼내 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한다. (속옷은 예외)


 벗은 옷을 그냥 세탁기에 툭 던져 넣으면 되는 것을 뭐 그리 거창하게 루틴까지 들먹이며 얘기하냐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당신! 그렇다면 일주일만 가족들의 빨래를 담당할 것을 권유한다. 단 주의할 점은 대충 하는 것이 아닌 투철한 직업의식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1차로 오염 제거를 하지 않아 세탁기에서 나온 옷이 그대로인 경우나 겉옷과 속옷을 같이 빨아서 속옷의 색깔이 거무튀튀해졌거나 옷의 소재를 보지 않고 빨아서 줄어들거나 훼손된 경우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빨래는 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빨래에도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야 깨끗한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다. 빨래에 대한 심심한 예의라고나 할까.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데 뭘 그리 엄살이고 생색이냐고 할 수도 있다. 맞다.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 하지만 빨래 전, 후의 일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빨래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며 세심한 손놀림과 매의 눈이 필요한 작업이다. 빨래별로 모인 양에 따라 세탁할 순서를 정하고 절차에 따라 빨래를 진행해야 한다. 옷의 상태도 매의 눈으로 체크해야 한다. 다 마른빨래를 갤 때에는 세심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잘못 접힌 빨래의 주름은 다시 빨기 전까지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신경 써야 하는 옷들은 잘 개야 한다. 주름을 펴야 하는 옷들은 다림질도 필요하다. 빨래의 일등공신은 세탁기가 맞지만 그 일등공신을 다루는 건 나다.

 

세탁기가 일을 끝내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잊어버리거나 다른 일을 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때에는 한나절이 지나서 꺼낼 때도 있고 밤늦게 꺼낼 때도 있다. 다른 일에 정신을 쏟은 날에는 아뿔싸! 다음날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끝나면 바로바로 세탁물을 챙겨야 하는 민첩함이 필요하다. 바로 꺼내지 못해 세탁기 안에 오래 있던 빨래들은 퀴퀴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특히 장마철에는 햇빛을 쬐지 못하고 대기가 습해서 퀴퀴한 냄새가 더 많이 나기도 한다. 퀴퀴한 냄새가 나지 않기 위한 노력도 내 몫이다.


가족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빨래 양도 많아지니 세탁기 돌리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 된다. 물론 일등공신 세탁기로 그 많은 빨래들을 손으로 빨지 않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언젠가 한 번은 애 셋을 키우고 있는 여동생네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 거실에 놓은 트램펄린 위에는 조카들 대신 건조된 빨래 언덕이 있었다. 아이가 셋이니 빨래 양이 많은 건 당연지사였을 터. 하루에도 몇 번씩 돌리는 세탁기와 건조기였지만 아이 셋 돌보느라 빨래 갤 틈도 없었던 것이다. 동생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빨래를 개기 시작했는데 한참이 지나도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울지 못해 웃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세탁기와 건조기로 빨래하는 시간과 힘은 줄었지만 여전히 빨래를 하는 사람에게는 해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아마도 전업주부라면 하루 중 잠깐 보는 남편보다 매일 내 곁에 남아 있는 빨래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또 워킹맘이라면 휴일에는 전업주부 모드가 되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주일 동안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빨래와 나 홀로 춤을 추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또한 혼자 사는 자취생들이나, 우아하거나 혹은 그렇지 못한 싱글족들에게도 빨래는 꼭 해야 하는 숙제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제이자 숙제인 빨래를 함에 있어서 그이들(세탁기 또는 건조기)은 우리에게 구세주나 다름없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엄마의 빨래는 어땠을까? 엄마가 젊었을 때에는 내가 사랑하는 그이가 없었다.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때였는지 중학교 때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엄마의 그이는 세탁한 빨래를 두 손 대신 자신의 드럼통을 열심히 뺑뺑이 돌려 물기를 빼주던 '짤순이'였다. 그 이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비누질을 해가며 빨래를 하고 헹구기를 여러 번 한 후 손으로 비틀어 물기가 거의 나오지 않을 때까지 꼭 짜서 빨랫줄에 널었다. 지금처럼 온수가 나오는 때가 아니니 겨울에는 오염이 심한 빨래나 속옷들은 물을 끓여서 찬물과 섞은 미지근한 비눗물에 담갔다가 빨아야 했다. 특히 겨울에 차가운 물로 빨래를 헹구는 일은 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라고 엄마는 얘기했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추운 겨울날 빨래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오면 찬물에 꽁꽁 얼어 빨갛게 된 두 손을 아랫목에 녹이곤 했었다. 그때 나도 손빨래를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한겨울의 손이 깨질 것 같은 빨래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엄마는 일부러 나에게 빨래를 시키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얼음장 같던 엄마의 손을 내 체온으로 더 빨리 녹여 주지 못한 무심함에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빨래가 많은 날이면 엄마는 삭신이 쑤신다며 힘들어했다. 청바지나 겨울 점퍼 같이 두꺼운 옷, 물먹으면 무겁고 짜기도 버거운 수건이나 면내의 등을 빤 날도 그랬다. 엄마가 몸이 약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던 나는 당시 경험한 물 먹은 청바지의 무게를 통해 빨래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짤순이 덕에 엄마의 손목은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짤순이가 조금씩 바래갈 때쯤에 아빠의 보너스는 금성세탁기를 데리고 왔다. 짤순이를 보내기 아쉬워하면서도 깨끗하고 하얀 그이의 등장에 엄마는 환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엄마가 했던 것에 비하면 난 지금 너무나 편하게 빨래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그이(들)는 분명 내 허리과 관절, 시간을 지켜주고 있다. 새삼 문명의 발달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런데 왜 문명의 발달을 나만 누렸을까. 지금까지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다. 이제는 남편과 자식에게 알려주고 같이 누려야겠다. 좋은 것은 함께 하라 했는데 나만 하고 있었다니 아니 아니 아니 될 일이지.

햇살에 보송보송 말라가는 빨래를 보면 내 마음에 들어있는 껄끄러운 감정들이 보송보송 말라 없어져 깨끗하고 빳빳한 광목천이 되는 것 같다. 주름 없이 새하얀, 그 옛날 엄마가 쓰던 무궁화 세탁비누로 빨았던 광목 이불 홑청이 그리워진다. 우렁각시처럼 가족들의 빨래를 개서 옷장에 넣어 둘 때면 뭔가 큰 일을 잘해 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승자의 기쁨 같기도 한, 때론 가진 자의 여유 같기도 한 그런 기분.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날 애타게 부르는 그이가 있기에 오늘도 난 외로워도 슬퍼도 기뻐도 빨래를 한다. 언젠가 빨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이루지 못할 꿈을 꾸면서 그이와 함께 춤을 춘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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