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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Nov 07. 2023

커피 없는 브런치에 커피가 있다

글쓰기에 대한 단상

  달그락달그락. 아침 설거지를 얼른 끝내고 부리나케 청소기를 돌리고 뒤섞인 빨래들을 분류하여 1차로 세탁기에 던져 넣는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머그에 물 한잔을 따라 아이 책과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책상 앞에 앉는다. 짜증 섞인 말 한마디가 튀어나올 법도 한데 오늘은 말없이 일어나 널브러진 것들의 제 집을 찾아주고는 진짜 자리를 잡고 앉는다. 노트북을 열고 볶은 보리와 옥수수를 반반 넣어 끓인 따뜻하고 구수한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키보드를 두드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사람들이 물처럼 마시는 그 흔한 커피를 어쩌다 한번 큰맘 먹고 마신다. 싫어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먹으니 나도 같이 먹겠다고 덤비는 순간, 가슴은 마구 두 방망이질 치면서 연신 두근두근 대고 두 발이 땅 위에 붕 떠 있는 것 같고  머릿속은 각성상태가 되어 또렷해지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텐션이 올라간다. 텐션이 업 되는 건 좋지만 어느 정도 선까지 가면 내려와야 하는데 지속 시간이 너무 길다. 심신이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본래대로 돌아온다. 문제는 이 각성 상태가 밤에도 계속 유지된다는 거다. 잠자리에 들면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을 잘 수 없는 상태가 되는데 학창 시절 물리시간에 작정하고 쳐들어 오는 졸음에 한없이 내려앉는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참아야 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그런 날은 눈은 감았으나 눈을 뜬 상태와 똑같이 밤을 낮처럼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마시는 때는 평소보다 한없이 떨어진 밑바닥 체력을 끌어올려서 사람을 만나야 한다거나 부득이 카페에 커피밖에 없는 경우, 또는 커피 향에 매료되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정도이다. 이런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일 년에 몇 번 안 된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삼라만상의 온갖 것들이 들어있는 듯한 매혹적인 커피의 유혹에 심하게 흔들릴 때가 많지만 눈을 질끈 감고 대부분 허브차를 주문한다. 이런 내가 이십일 전부터 브런치를 하느라 계속 커피를 마시고 있다.


  요 근래 브런치를 만드느라 밤을 새우는 날이 많다. 브런치 심사에 제출할 거라 맘 편하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브런치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내 나름의 의지도 있었지만 이보다 20일 전에 인터넷에서 구매한, 정확히는 2023년 10월 13일에 생산된 '슬초 브런치 2기' 커피 영향으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카페인이 많은 만큼 중독성 또한 끝내준다. 평소에 마시던 커피와는 차원이 다르다. 예전에 먹던 커피라면 카페인의 위력에 내 몸이 감당이 안 돼 한동안은 절대 자진해서 마시지 않았을 텐데 요즘은 이 커피로 수혈 중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과 향(하긴 내가 먹어 본 커피가 얼마 없으니 이건 당연한 거다)이다. 첫 만남의 설렘과 상큼함,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가슴 시리고 저린 알싸함, 힘겹기만 한 세상살이의 독한 쓰디씀, 어딘지 모를 연륜이 느껴지는 깊은 풍미, 스스로 나 좀 괜찮은 사람이라고 분위기 잡고 싶게 만드는 세련됨, 오랜만에 연극에 올라가는 중년 배우 마냥 긴장되지만 약간의 달달함이 가미된 흥분이 한데 뒤섞여 깊고 오묘한 맛을 자아냈다. 비록 독하고 중독적이기는 했으나 맛과 향에 있어서는 그 어떤 커피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 몸 가득 퍼지는 커피 향은 새로운 꿈과 희망까지 불어넣어 주었다. 브런치를 만들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건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브런치를 만드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커피를 좋아하고 즐기다니. 게다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이제는 밤새는 건 죽어도 못하겠는데  이렇게까지 자발적으로 커피로 충전을 해가며 밤을 새워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브런치'가 뭐길래.

  아주 오래전부터 브런치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삼시세끼 밥상 차리기에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브런치에 도전하겠다니 안 될 말이다. '브런치가 웬 말이야? 그냥 먹던 대로 먹어. 그리고 내가 만든 걸 누가 먹고 싶기나 하겠어?' 이런 내적 합리화와 도피로 작년에도 브런치 문 앞에서 서성이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브런치를 만들고 싶은 욕구는 커졌고, 브런치에 쓰일 재료들이 순간순간 떠올랐다. 청소나 설거지를 하면서, 나무가 옷 바꿔 입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면서, 부부싸움 후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리며 속으로 남편 욕을 하면서, 내 말 안 듣는다고 등교하는 아이한테 속사포를 쏘고는 자책감에 편지 쓰며 좋은 엄마 코스프레 하면서, 스마트폰에 저장된 지나간 옛날 사진을 보면서, 남편과 아이가 아재개그에 심취해서는 내 웃음이 짜증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할 때에도, 심지어 지나가던 새가 싼 똥과 우리 집 앵무새 똥 크기를 비교할 때에도 재료들이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그때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삼시 세끼를 했다.

  삼시 세끼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많이 참고 참았던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올해 다시 짧은 망설임 끝에 작고 초라한 손으로 브런치 문을 두드렸고, 드디어 갈망하던 브런치의 세상에 첫발을 디뎠다. 첫 발을 디딘 날, 내 가슴은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계속 두근거렸다. 커피를 마셨을 때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아주 기분 좋게 두근대고 있었다. 실제로 이 날은 가족들한테 한껏 우아한 말투로 다정함을 무한 선사하기도 했다.

  브런치의 세상에 들어가면 브런치를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그리 녹록지 않았다. 제대로 된 브런치를 만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들어도 요린이인 나에게는 버거운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내 아이를 위해 처음으로 이유식을 만들 때처럼 좋은 재료를 써서 조심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정성을 다해 브런치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나 혼자만 먹을 수도 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과 나눠 먹고 싶었다. 내 음식을 먹을 누군가를 위해 어떤 재료를 쓸지, 어떻게 조리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재료 선택부터 난관이었다. 브런치를 만들기 전 여기저기에서 순간순간 보이던 재료들이 막상 만들려고 하니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보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따지기도 여러 번, 그러다 '심봤다'를  외치며 찾은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만들지가 더 큰 고민이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해 준 브런치만 먹을 줄 알았지 막상 내가 만들려고 하니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지 않아서 차라리 안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속 브런치를 만들 수 있을까?


생산연도 2023년 11월 4일 자 '슬초 브런치 2기' 커피를 내려 마신다. 집안에 커피향이 가득하다. 하얀 머그컵에 담긴 투명한 검은색 액체를 잠시 바라본다. 꽤 독한 듯하지만 또 꽤 향긋한 향이다. 코로 한껏 빨아들여 폐 속 깊숙이 집어넣는다. 카페인이 온몸을 돌아 머리에 당도할 즈음 나는 점점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한 모금 마셔본다. 나를 위한 브런치도 못 만들어 봤는데 남을 위한 브런치를 만들겠다는 게 맞는 건가 싶다. 그러다 처음부터 브런치 잘 만드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셀프 위로도 건네 본다. 처음 브런치를 하겠다고 도전하던 나를 떠올려 본다. 누구를 위해 만들고 싶었던 것도 아닌, 사람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고 싶어 시작한 것도 아닌, 단지 브런치가 좋았고 오직 내가 만들고 싶은 브런치를 원해서 시작했던 처음의 나로. 두 번째 모금을 마신다. 오늘따라 유난히 커피가 쓰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만들다 보면 나만의 브런치가 생기겠지. 그러다 보면 브런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 내 걸음의 빠르기로 천천히 가 보기로 한다. 세 번째 모금은 조금 달다.



일요일 아침,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브런치 하면 이제 나한테 신경 안 써주는 거야?"

"응. 너도 다 컸으니 자립해야지."

이 말에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으나 바로 그 뒤의 묘하게 기뻐하는 아이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훌쩍 큰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옆에서 밥 한 숟가락에 배추 겉절이를 입 안 가득 넣고 우물거리던 남편이 물었다.

"그거 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

대답하기 싫다.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오. 대신 남편의 심드렁한 말에 갑자기 앞으로 더 진한 커피를 타서 마셔 봐야겠다는 전에 없던 야망이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커피가 식었다. 다시 내려야겠다. 내게 이제 커피 없는 브런치는 없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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