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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Nov 01. 2023

도 닦으려고 결혼했어요

-나의 어린 교주

  13년째 도를 닦고 있다. 그것도 집에서 아무 때나 수시로 강약 조절 없이 마구잡이로 꾸준히 매일 닦고 있다. 학문을 이렇게 닦았으면 아마 서울대, 아니 세계 유수한 대학도 거뜬히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닦았어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과연 끝이 있기나 할까? 무슨 이유로 어떻게 도를 닦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반은 내 의지로 반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입문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종교라 칭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종교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맹목적으로 헌신하며 소속되어 있기도 힘들 것 같다. 처음부터 이 종교 같지 않은 도에 대해 익히 들어왔고 주변에서도 아주 많이 봐 왔지만 내 발로 기어들어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도를 닦게 될 줄은 '나의 어린 교주'를 영접하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10대에는 어른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 공부했고, 20대에는 노느라 허송세월을 보냈고, 30대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으나 평탄한 삶을 깰 용기가 없었다. 그러다 고개 들어보니 어느덧 40의 문턱에 서 있었고, 언젠가는 하겠지 하며 미뤄 둔 ‘결혼’이란 과업을 지금 이행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방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아무렇지 않은 척 평정심을 유지하고 계시던 부모님의 최대 관심사가 점점 '딸자식 결혼시키기'가 되어 갔고, 더 큰 이유는 그동안 해 놓은 것 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남편이라는 내 편 하나 만들지 못한 내가 바보처럼(지금에서야 이 생각이 진짜 바보 같은 것이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겠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물론이요, 내 동생 또한 가장 예쁠 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안 한다는(못한 게 맞으려나) 건 왠지 나만 밑지는 인생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노처녀로 혼자 늙어 죽긴 싫었나 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때 잠깐 미쳤었나 보다. 결국 남편감 사냥에 열을 올리며 친척, 엄마 친구, 내 지인들까지 동원해 가며 못다 한 소개팅의 한을 풀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마흔 임박에 웨딩드레스 대신 전통혼례복을 입고 결혼의 의무를 다했다. 의무라 해도 꽤 좋았다. 그러나 권리와 의무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그렇게 달콤하다는 신혼은 끝내 알지 못하고 결혼 두 달 만에 죽을듯한 입덧에 시달리는 임신부가 되었다. 임신은 둘째치고 계속해 오던 사회생활 경력 또한 뚝 끊겨버렸다. ‘그래, 잘 됐어. 이참에 쉬면서 태교나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다시 생각해 보면서 지내지 뭐. 출산하고 아이 키우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해 보자고.’ 이렇게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입덧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지만 배 속의 아기는 잘 자라고 있었다.

-출처: 픽사베이


  제2의 인생은 개뿔, 아니 아주 완전 새로운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출산과 동시에 얼떨결에 엄마라는 사람이 되었고, 뭔가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 같았던 내 삶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수련의 세게로 인도되었다. 이름하여 ‘육아’의 세계. 분명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건 확실했지만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수렁인 것도 확실했다. 태어난 아기는 신기했지만 예뻤다. 탁함이 1도 없는 초롱초롱한 새까만 눈동자, 아주 쪼끄만 해서 숨을 쉬고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한 콧구멍 두 개, 오물거리는 입술, 양쪽에 잘 자리 잡고 있는 앙증맞은 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비엔나 소시지를 급호감으로 만들어버린 통통한 팔과 다리.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다 꼬물거리는 손가락에 내 검지를 갖다 대면 아기는 행여 놓칠까 손가락을 꼭 잡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움켜 쥔 손의 체온을 느낄 때에는 온몸에 잠시 전율이 일기도 했다. 심지어 시도 때도 없이 젖 달라고 우는 소리마저도 경이로웠다. 이 작은 생명체를 내가 낳았다니. 한순간 내가 좀 기특해지기까지 했다. 하나 이상한 건 분명 내 배 아파 낳았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좀처럼 마음으로는 내 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기를 낳으면 모성애가 생긴다던데 난 뭐지. 바로 생기는 게 아닌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아기도 낯설었고, 어떻게 안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젖은 잘 나오지 않아 괴로웠다. 더군다나 무엇을 원하는지 영 감이 안오는 아기의 울음은 좀처럼 해석이 어려웠다. 내가 과연 이 아기를 책임지고 잘 키울 수 있을까. 점점 출산의 얼떨떨함은 앞날의 두려움으로 자리 교체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기는 두려움을 떨쳐낼 시간도 주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고 일어나게 했다. 그렇게 아기로 빙의한 '나의 어린 교주'는 새로운 세계에 엉겁결에 발을 디딘 한 인간을 자신의 길로 인도하며, 잠재해 있던 모성애를 발현시켜 점차 진정한 교인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우고 있었다.

  어린 교주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자신의 교리를 설파하며 자신만을 바라보고 따르라 했다. 마치 그전의 나태하고 해이했던 삶에서 빠져나와 새 사람이 되라고 자꾸 채찍질을 하는 것 같았다. 힘은 세상 누구보다 약했지만 자존감은 강해서 그 어떤 누구와도 대화하거나 타협하지 않으려 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교주를 위해 헌신하는 삶, 희생하는 삶이 시작됐다. 산부인과 차트에서부터 이미 ‘old age'라고 분류된 나이 든 여자 교인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며 살아갔다. 오후 4시가 되면 같이 사는 남자 교인의 귀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교대시간이 오기만을 고대했다. 귀가한 남자 교인도 같이 수련을 했으나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나하고 보내는 어린 교주는 남자교인에게는 그다지 힘든 수련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남자 교인도 그걸 알고 있는지 나만큼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고된 수련이 계속될수록 뛰쳐나가고 싶고 손 놓고 싶을 때가 많았다. 우울증에 누가 조금만 내 마음을 읽어주면 왈칵 울음을 쏟기도 했다. 힘든 나날이었지만 어린 교주의 모든 것을 고분고분하게 받아주면서 꿋꿋하게 참으며 묵묵히 수련을 해내고 있었다. 더디게 시간이 흘러갔다. 어린 교주는 대부분의 울음과 칭얼거림, 영문 모를 옹알이 속에서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방긋 방굿 웃어 주었고, “ㅁ-마, ㅁ-마“ 하며 기어와 내 품에 파고들었다. 품속의 꼬물거림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따뜻함과 포근함, 보들보들한 살갗의 감촉,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파우더리한 아기 냄새는 힘든 수련을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더 나아가 나란 존재는 잊은 채 언제까지나 어린 교주를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마법인지 마약인지 도통 모르겠는, 되돌아갈 수도 없고 빠져나올 수도 없는 그 무엇. 그것은 모.성.애.였다.

   "큰일 났다. 어린 교주한테 제대로 걸렸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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