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

by 달쓰다

짧은 가을이 지나고 갑자기 추워지더니 폭설이 내렸다. 지난 여름은 징글징하하게 덥고 오래 가더니 이번 첫눈도 징글징글하게 많이 내렸다. 첫눈이 이렇게 많이 오면 다음번 눈은 어쩌려고 그러는지. 올 겨울 추위를 예고하는 눈인 것 같아 겁이 났다. 첫눈이 오기 훨씬 전부터 집에서도 두툼한 플리스 집업을 입고 그 위에 조끼를 껴입고 털덧신도 신고 머플러도 두르고 있었다. 구축 아파트의 낡은 배관과 인상된 난방비 덕분에 집안에서도 완전한 겨울 복장으로 지내오던 터였다.



점점 나이를 먹고 겨울을 맞으니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난다. 나이 드신 분들이 왜 옛 추억에 젖고, 친구가 그리워진다 하는지 알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내 머리, 심장의 어딘가에 붙어 있는 감성이란 놈이 나이 들면 그래야 한다고 나를 자꾸 부추기고 있다. 요즘 들어 내게 그리운 건 뜨끈뜨끈한 온돌방의 아랫목이다. 불이 잘 붙은 연탄의 화력으로 뜨겁게 달구워진 구들장의 아랫목 장판이 누리끼리하다 못해 검게 변한 아랫목 말이다. 지금의 아파트에서는 절대 꿈꿀 수 없는 일이다.

grill-2499759_1280.jpg 이미지 출처: pixabay


아랫목에 등을 대고 이불을 덮고 누우면 추위로 굽었던 등이 펴지고 손발이 녹는다. 요즘 나의 단짝이고 최애인 전기매트도 충분히 이 정도쯤은 할 수 있지만, 마치 고주파 치료기 처럼 몸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시원하면서도 뜨거운 기운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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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은 등을 대고 지질 수도 있지만 엎드려 배를 깔고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귤바구니에 손을 뻗어 귤을 까먹기도 했다. 별다른 간식거리가 없던 어릴 때에는 귤은 최고의 겨울 간식이었다. 요즘엔 귤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 때는 오로지 그냥 귤이었다. 책 속에 빠져 어느새 손톱 밑이 노래질 때까지 까먹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지나 내 손바닥도 귤색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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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에서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는 동안 엄마는 옆에서 뜨개질을 했다. 어느 해에는 조끼, 어느 해에는 모자, 또 어느 해에는 목도리를 하나씩 만들어 냈다. 누구의 가르침 없이 혼자 오롯이 뜨개질을 하고 있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때가 되면 부스스 일어나 밥상을 차려 오셨다. 귤을 먹고도 그 밥이 어디로 또 들어가는지 금세 다 먹고는 다시 아랫목을 사수했다.


때때로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이면 마당으로 나가 동생과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 때로는 눈싸움을 하러 집밖이나 학교 운동장으로 원정경기를 나가기도 했다. 추위로 빨갛게 익은 볼과 눈에 젖은 털장갑 안에서 빨갛게 손끝이 꽁꽁 얼어 들어온 날이면 집에 들어와 얼른 아랫목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손의 감각이 돌아오면 스르르 감기는 눈꺼풀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추위가 계속 되면 밥상에 국과 찌개가 늘 따라나왔다. 엄마가 조금 더 특별식을 할 때에는 탕과 전골도 등장했다. 콩나물국, 무국, 김칫국, 시금치 된장국, 미역국, 게란국, 감잣국, 된장찌개, 청국장찌개, 생선찌개, 소고기 버섯 전골, 어묵탕, 닭볶음탕, 삼계탕, 곰탕 등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엄마가 신기했다. 하지만 그때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엄마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는 주부가 되었다. 이건 유전이 안 되나 보다. 퇴근 후 집에 오신 아빠와 함께 네 식구가 옹기종기 아랫목에 놓인 밥상에 모여 앉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떠 먹을 때면, 굳이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따뜻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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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나기 위해 연탄을 들이는 것도 김장 만큼이나 중요한 행사였다. 아랫목의 온기, 열기를 식지 않게 하려면 연탄은 필수였고, 더불어 연탄불은 절대 꺼뜨리면 안 되는 성역과 같았다. 그러다 보니 한밤중이나 새벽 잠결에 순번을 정해 연탄을 갈러 나가는 부모의 인기척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연탄불을 꺼뜨리는 어마무시한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추운 겨울 단잠을 설치며 일어나야 했던 부모의 귀찮고 싫은 마음은 아랑곳없이, 나는 아랫목의 따뜻한 기운을 이불 속에서 느끼며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밤 9시가 되기 전이면 TV에서는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어른들을 위한 것인지 모를 멘트가 흘러나왔다. 긴긴 겨울밤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아랫목에 펼쳐진 이부자리 위에서 말똥말똥한 눈을 한 채 시간을 보냈다. 깜깜한 밤과 추위가 집을 감싸고 돌 때쯤이면 "메밀묵 사려, 찹쌀떡"을 외치며 다니는 찹쌀떡 장수의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배경으로 아빠가 라디오를 틀면 어제에 이어 친숙한 목소리들이 활개를 치는 라디오극이 시작됐다. TV채널도 다양하지 않고 OTT가 웬말인 시절, 조용한 밤에 듣는 라디오 소리는 낭만이 뭔지도 몰랐던 어린 내가 듣기에도 좋았다.


돌이켜보니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겨울밤, 온돌 아랫목에서 가족과 함께 한 시간들은 행복했다. 그렇게 아랫목에 내 유년의 겨울이 있었다.



연탄 아궁이가 사라지고 기름 보일러가 놓이면서 내 아랫목은 사라졌다. 스무살 때로 기억한다. 벌써 삼십년이 넘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아랫목'이다. 지금은 그 때보다 외풍 없는 집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춥다. 분명 세상도 더 좋아졌는데 더 춥다. 아랫목이 다시 생기면 나는, 세상은 따뜻해질까? 올 겨울, 아랫목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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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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