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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치 Feb 22. 2024

탄타로 가는 길

이집트 활동가 마르와를 만나다 (2.28.2023)



모래 바람이 적당히 부는 날, 그냥 출발해 버리는 마이크로버스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탄타에 살고 있는 마르와를 만나러 가고 있다. 부르카가 더웠는지 뒷자리에 앉은 사람이 창문을 열어달라 한다. 창문을 열었더니 먼지가 사정없이 들어와 눈을 뜰 수가 없다.


탄타로 가는길 내내 모래 싸다구를 맞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유튜브나 인터넷 세상의 이집트 방문기를 보면 여성들이 거리에서 캣콜링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탄타도 여성이 홀로 여행하기에 안전하지 않은 지역이라는 기사를 봤다. 나는 운이 좋았던 걸까. 이집트에 사는 4개월 동안 캣콜링을 당한 적이 없다. 어느 지역을 가든 이집트 사람들이 이브라힘의 친구와 가족처럼 느껴졌다.


이브라힘은 한국에서 난민 인권 활동을 하며 만난 이집트 출신 친구다. 이집트 여기저기서 어딘가 한구석 이브라힘을 닮은 사람들을 보면 친숙하게 느껴졌다. 곱슬머리와 진한 눈썹, 사막 모래에 그을린 얼굴을 보거나 거리에 울리는 다르부카의 쇳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마르와는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처럼 나를 맞이했다. 그는 탄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친구가 운영하고 있다는 카페로 나를 데리고 갔다.


탄타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에 있는 중소 도시로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 1800년대에 목화 이송을 위한 통로가 되며 큰 도시로 성장했는데, Hubb El-Azziz(설탕으로 코팅된 견과류- 코코넛과 깨, 땅콩과 병아리콩 등으로 만듦)가 유명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고국으로 오지 못하는 이브라힘도 이 간식을 그리워해서 마르와와 내가 보내주기로 했다.


우리는 카페에 도착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우습게도 우리가 가장 진지하게 나눈 대화의 주제는 망고다. 이집트 망고 종류는 200가지가 넘는데, 종에 따라 더 시거나 달거나- 각각이 다르며 맛있다는 이야기를 마르와가 어찌나 오랫동안 이야기했던지 흘러나오는 침을 단속하느라 힘들었다. 8월부터 이 망고들을 하나씩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애석하게도 내가 이집트에 머물던 기간과 달라 코빼기도 볼 수없었다. 흑흑흑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집트 답게, 어딜가든 고양이가 가득했던 카페
큰 목소리로 망고를 설명하던 열정의 마르와가 생각난다.







거리의 경찰들


두어 시간 신나게 수다를 나눈 우리는 배가 고파 다시 거리로 나왔다. 탄타 거리를 걷자 곳곳의 경찰들이 보였다. 나는 공공장소를 깡패처럼 점유하고 있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화가 나서 물었다. "마르와, 도대체 경찰들은 저기서 하루종일 뭘 하는 거야?"



경찰들은 자기 자신과
정권을 지키기 위해 일하지
우리가 일상적인 위험을 감지하는 이유는
경찰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야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에 다시 군사 정권이 들어서며 그 누구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거리엔 경찰과 군인들이 보초를 섰다. 사람들의 일상은 감시되기 시작했다. 공권력이 부패하고, 억압 정책이 현재까지도 심각하게 이어져오고 있는 현실을 보며 좌절감을 느꼈다. 마르와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서로를 돕고,
공부하고, 여행하며 살고 있어
그것에 만족하려고 해  


한사코 거절하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메뉴판에 있는 거의 모든 메뉴를 시켜 내게 맛보여준 마르와. 한국에 있는 이브라힘이 나를 꼭 이렇게 먹여라 했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엘 사이드 아흐메드 알바다위 모스크 광장에서


마르와가 사준 점심을 먹고 탄타의 큰 광장이자, 오래된 장소인 엘 사이드 아흐메드 알바다위 모스크(El Sayed Ahmad Albadawy Mosque)로 갔다. 우리는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모스크 맞은편의 카페로 갔다. 나는 마르와가 시킨 레모네이드를 따라 시켰다. 레몬 시럽이 찌릿하니 온몸으로 퍼졌다. 레모네이드를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울타리 너머로 한 아이가 와서 손을 내민다.


카이로는 문명이 배경이 된 도시라면, 탄타는 농부들이 세운 된 도시다. 마르와는 탄타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리비아에서 온 수피 사람들, 수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베두인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라고 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계속 마르와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유를 누리지 못해
소셜 공간에서 작게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 바꾸진 못하지


마르와는 이곳에 이브라힘과 많은 추억이 있다 했다. 10대~20대 때 틈만 나면 친구들과 이 광장에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토론했다고 했다.


탄타에는 아랍권 전역에서도 알아주는 저명한 교육기관들이 있고, 이집트 사람들 사이에선 보스 타운(boss town)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혁명 이후 보수적인 사회로 바뀌며 문명이 많이 파괴되었다지만, 여전히 이집트 내에서 똑똑하고 관대한 사람들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다. '그에게 뭔가를 시도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는 탄타 출신입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매년 10월 말에는 알바다위 광장에서 큰 축제가 열리는데, 그로 인해 아랍 세계에서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와 낮은 임금으로 탄타의 젊은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이집트의 물가는 2배에서 많게는 3배까지 뛰었다. 예를 들어 소금 가격이 불과 6개월 사이에 두 배가 된 것이다. 임금은 오르질 않는데 물가가 치솟으니 젊은 사람들은 투잡, 쓰리잡을 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생활비에 사람들의 분노가 커질수록 경찰과 군인들의 갑옷은 더 두꺼워지게 될까. 처음엔 탄타 거리 곳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던 나를 멈춰 세우는 마르와가 이해되지 않았다.


마르와와 나, 알바다위 광장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니, 경찰 사진은 고사하고 그냥 도시의 모습조차도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던 마르와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시민들의 일상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록 시민과 정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은 고조될 것이다.


이집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브라힘도, 이집트에 남아있는 마르와도 그저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일상의 감시를 벗어나 이들이 모두 자유로이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행 아랍어


메르하바

비캠-비캄/얼마예요

께다- 이거

갈리- 비싸다

갈리짓단-많이비싸요

키티르- 비싸 많아

아나 파키르- 나 가난해

아니-라/ 임시- 꺼져

왜-레?

주세요 원해요- 몸킨 어쩌구

좋다- 따맘

전부-콜로

아니나 함암?- 화장실 어디예요

할루아 뷰티풀


1 와햇

2 이쓰낸

3 딸라따

4 아르바

5 캄사

6 셋타

7 사바

8 따마니아

9 데세인

10 아샤라

11 햇아샬

12 이쓰나샬

13 딸라따샬

14 아르바따샬

15 카마스타샬

16 셋타샬

17 사바따살

18 아르바따샬

20 에슈린

50 캄신

100 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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