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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치 Jan 05. 2025

나는 티베트의 자유를 지지합니다.

티베트 봉기의 날 65주년을 맞이하여

2009년, 쁘리용꼴 빠벨과 동인도를 여행할 때 일이다. 한동안 꼴까따 친척집에 머물며 더위에 지쳤던 우리는 다음 여정지로 다르질링을 골랐다. 다르질링은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산간 지역이다. 



다르질링으로 가는 지옥의 버스에서 그래도 우리는 웃고 있었구나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론니플레닛을 펼쳤다. 다르질링에서 갈만한 곳이 아기자기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자를 보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티베트 공동체가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티베트 공동체는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흥미로운 장소 중에 하나였다.


 티베트 공동체에 가는 길은 꽤나 등산을 싫어하는 쁘리용꼴과 빠벨에게 곤욕스러운 코스였다. 나는 가는길 내내 그들을 어르고 달래며 가야했는데, 도중에 나도 힘들어서 그냥 포기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살던 우리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다르질링의 기후, 이슬을 머금은 바람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힘들게 도착한 티베트 공동체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동체 분들이 지내시는 공간엔 커다란 직조 작업장이 있고, 바로 그 옆엔 작은 전시공간이 있었다. 마침 사진전이 있었는데, 어떻게 자신의 고향을 떠나 이곳까지 오게되었는지, 그들의 역사를 담은 내용이었다. 나는 그 전시를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지구상에 난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난 그날 그곳에서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꾼 사진 한장을 만났다. 완전 무장을 한 중국 공안이 돌도 부술 것 같은 철갑 군화를 신고 있었는데, 그 군화의 아래에 넝마를 걸친 티벳승려의 머리가 있었다. 그 장면은 내 영혼을 휘감았다.



삶은 예상치 못한대로 나를 데려간다. 그 사진은 내가 잊고 있던 모든 것을 기억하게 했다. 친구들과 이름이 다르다는 놀림받았던 기억,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당했던 왕따, 기댈 가족-친구 없이 혼자 골목을 떠돌던 나날들



이후 방글라데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질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이 일어나야하는걸까?



나는 사라지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011년 인도 다람살라의 록빠(한국에서는 @rogpashop 사직동그가게로 유명한)로 갔다. 약 2주 넘는 기간동안 록빠에서 자원활동을 하며 록빠를 운영하는 빼마와 다람살라에 있는 달라이라마, 티베트 사람들을 만났다. 그후 12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난민인권센터에서 활동하게 됐다. 그 사진을 만난 후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티베트 사상과 사람들은 내게 고통의 삶을 이해하고 살아가는데 있어 주요한 영감을 준 원천이다. 내가 만난 티베트 사람들은 중국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폭력의 구조와 평화적으로 싸워나갈 것을 가르쳐줬다. 나는 티베트를 통해 세상의 많은 차별과 폭력을 보게되었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지혜를 얻었다. 그래서 티베트는 내게 고향과도 같다. 나는 티베트를 사랑하고 티베트 사람들을 응원한다.



오늘은 티베트 민중봉기 65주년 기념일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1959년 중국의 무력 침략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티베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티베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오늘 하루는 티베트를 기억하고 티베트 사람들과 연대하는 마음을 담아 이 영상을 가지고 왔다. 이 영상은 2017년에 기획한 난민영화제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브링 홈: 아버지의 땅>의 gv요약본이다. 이 영상을 보시는 많은 분들께 티베트 이야기가 전해졌으면 좋겠다.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7XYCC3MQyas&t=25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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