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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치 Oct 29. 2021

글쓰기 사망 선고를 받다

#7.  그럼에도 다시 쓰기 위하여


지구에서 가장 빨리 돌아가는 도시 서울

그곳에서 나는 10년 전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

 



인권 활동의 속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

그 곱절의 이상으로 매일이 긴박하게 흘러갔다.

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언젠가부터 폭풍처럼 몰아지는 활동의 홍수에 휩쓸려갔던 것 같다.


사무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화장실 갈 시간도, 아니 물 한 모금 조차 마실 시간 없이 휩쓸리다 보니 그 긴장감이 일상까지 침투해 불면증과 불안증이 일상적으로 따라왔다.


새로운 활동가들이 오면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집중을 하고 일할 수 있는지’라며 한숨을 내쉬다가

세 달쯤 되면 어느새 이 전화, 저 전화를 받으며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고선,

“여기에서 적응하고 집중해서 일 할 수 있다면 다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잘 적응할 거야!”라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계속해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와 방문자들을 대응하고, 동시에 6가지의 일들을 처리해내야만 하는,

짧은 시간 내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없었던 ADHD 생기게   같다. (원래 있었던 것 같다)


수천개의 파일을 만들고 수백통의 전화를 돌린 날에는 이상하게 교통카드가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나는 내 교통카드를 비롯해 친구의 신용카드까지 2주일 사이에 6개를 잃어버렸고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빠르고, 많고, 어렵고, 무겁고, 화나고,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한 일을 장시간 하다 보니

내 일상은 늘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 녹초가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게 없었다.

활동과 관련 없는 일상, 다른 친구들을 만나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것은 잊은  오래였다.

당연히 점점 그 어떤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드라마 한편도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3 인가

대한민국을  달간 흔들어 놓았다고  만큼의 커다란 이슈가 내가 활동해오던 범위를 관통했고 나는  시기를 지나며 결국 번아웃이 됐다. 이미 누적된 소진감이 있었는데 그때 극단적인 상황들에 개입하게 되면서 터질게 터졌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리 애써도 글이 읽히지 않았다.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어도 어두와 어미가 연결되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다.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이미 뇌에 정해진 용량 이상을 넣고 넣었다.
그래서 너의 뇌는 일종의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다.




나는 정말 사망 선고를 받는 기분이었다.


활동에 가장 중요한 건 글을 쓰고 읽는 능력이다. 그런데 더 이상 글을 쓰고 읽을 수 없다니 충격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대로 나는 글쓰기와 영영 헤어져야 하는 것일까?






글쓰기 사망 선고, 그리고... 


활동은 글을 쓰는 것과 읽는 능력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3년의 거듭된 노력에도 회복되지 않는 내 상태를 받아들이고,

활동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잃어버렸던 글쓰기를
다시 는 과정에 있다.







언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메시지  자체를 생성하는 원천이다.
언어는 삶을 빚어낸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형성되지 않았던 모호하던 세상을 삶을
명료히 빚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생각하고 쓰는 것이 아닌
쓰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다. -송범근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노력에는 글쓰기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경험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생각하고 재조립해내야 나의 것으로 소화되는 무언가. 어떤 결실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글쓰기 사망선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쓴다.

나는 생각하고 쓰는 것이 아닌, 쓰기 때문에 생각하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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