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집사 달린과 아기고양이 달타냥의 달달한 일상, 프롤로그
동물친구 : 반려동물과의 유대관계, 정서적 교감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는 반려동물이 항상 함께 있었다.개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지인들을 통해, 개를 업어오곤 하셨고.. 가족들 모두 반려동물을 환영했다.
가족들 중에서도 동물과의 정서적 교감이 유독 높았던 나였기에, 식구들은 나를 '동물친구'라 불렀다. ( 지금도 여전히 :) )
이를테면, 동물에게 말을 걸어주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을 아는 그들도 스스럼없이 곁을 내어준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면 코를 갖다대며 인사를 건내고, 껌딱지처럼 졸졸 쫒아댕기는 그런 것들 말이다.
'아롱이, 복남이, 복실이, 진돌이, 까미, 아루스, 둘리, 흰둥이, 담비, 바둑이'.. 정말 그 옛날, 할머니 또는 아버지 시절의 친근한 이름들.
어떤 아이는 좀 더 넓은 환경에서 뛰놀 수 있는 시골 할머니댁으로 가고, 어떤 아이는 아파서, 어떤 아이는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반려동물의 빈 자리를, 다시 반려동물이 채워주던 어린 시절이었다.
마당이 있던 집의 특성 때문인지, 동물들에게 우호적인 집(?)이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인지, 동네 개들이 우리 집의 카사노바견 둘리(훈남)를 만나러 몰려오기도 했고,
동네 길냥이들이 가끔씩 들려, 마당에 대자로 누워 햇볕을 쬐다가, 할머니가 던져주던 북어포를 받아먹고 쉬었다 가기도 했다.
아예 제 집인양, 몇 달씩 거주하며 숙식을 제공받고 떠나는 여행객냥이도 있었고, 심지어 뒷산에서 내려온 누런 족제비가 부엌에 들려 먹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들고나가며, 눈이 마주친 적도 있었다.
그 모든 동물친구들의 이야기를 다 적을 수는 없겠지만, 함께 지냈던 동물친구들과의 재미나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펫 로스 (Pet Loss, 반려동물상실증후군) : 관계의 상실, 슬픔과 치유의 시간
내 손으로 직접 입양하여, 자식처럼 키웠던 '산도'라는 고슴도치가 있었다.
고슴도치는 빛에 예민하고, 적정 온도 유지와 청결 관리, 그리고 핸들링까지, 많은 부분을 신경써줘야하기 때문에, 양육법에 대한 사전 지식과 준비가 필요한 소동물이다.
몇 달 동안, 많은 부분을 공부하고 검토한 뒤, 산도가 담긴 작은 상자를 품에 안고 조심조심 데려왔던 그 날이 생생하다.
한 손바닥 안에 들어오던 작은 크기의 아가 녀석이, 500그램의 무게로 양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사이즈로 성장하며, 약 4년이란 세월을 함께 살았다. 엄마가 아기를 키우듯, 공을 들이고, 정성을 쏟고, 사랑을 주면서.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키우던 산도가 장성한 시기를 지나 쇄약해지고, 병원 치료와 투병 생활을 하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펫로스'로 크게 슬픔을 치르면서,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던 아픈 기억이 있다.
펫로스 (Pet Loss)란?
가족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뒤에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 슬픔, 죄책감 등을 의미한다.
반려인에게 반려동물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이자, 부모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고, 생활패턴을 그들 중심으로 바꾼다. 그래서,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관계의 상실을 의미하고, 그 고통은 자식을 잃은 고통에 버금간다고 한다.
깊지 않은 사이, 혹자들은, 설치류(일명, 쥐)에 무슨 정을 그리 쏟았냐고 하는 이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 고슴도치는 설치류가 아니라, '고슴도치과에 속하는 포유류'이다.
설치류든, 고슴도치류든, 사실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가족처럼 함께 지낸 생명'임을 안다면, 그리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닐텐데...아마도 반려인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된다.
산도를 떠나보낸 이후로, 다른 반려동물을 더 키우지 않겠다 다짐했다. 동생과 함께 살며, 동생이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15년된 마르치스견 호야의 양육을 함께 돕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
어릴 적에 겪었던 펫로스와 성인이 되어 겪는 펫로스는 그 슬픔의 크기는 같겠지만, 잊혀지는 시간의 속도와..거기에 더해진 무게와..책임감의 크기는 너무나도 달랐다.
어릴 적 멋 모르고 병아리 새끼를 받아오던 그런 호기심이 아닌, 또는 가족 모두가 함께 나누던 공동의 책임이 아닌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품에 안은, 내가 책임져야할 금쪽같은 내 새끼' 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묘연 : 고양이와의 인연이 닿다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것은,
앞으로 사는 그 날까지, 함께 지내야할 가족을 들이는 일이기에, 정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할 일이라는 것을..너무나도 잘 알 수 밖에 없는 나였다. 그 다짐 이후, 7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어느 여름 날이었다. 지나는 길에 간판을 보고 우연히 들어섰던 고양이 분양 캐터리. 그 곳에서 마주한 아기고양이와의 아이컨택..
일 때문에 지쳐서 걷다가, 그저 따뜻한 온기의 털뭉치 고양이를 보면 힘이 날까 싶어 들어갔던 그 곳에서, 그 아이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애써 외면하고 겨우겨우 빠져나왔다.
벌써 8개월 전의 일이다. 그렇게 아이컨택을 했었던 그 아기고양이는 가끔씩 떠올리며 웃음을 짓게해주는 따뜻함이 되었고, 조금씩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양이분양 정보, 고양이입양 방법, 고양이카페, 고양이양육 방법 등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지인 집사들에게 많은 것들을 질문하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내가 다시 잘 키울 수 있을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고양이를 들이면, 같이 살고 있는 동생과 마르치스견 호야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동생에게 진지하게 물어볼까?' 하다가도, '아니야. 호야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산도를 데려왔을 때도 엄청 질투했었잖아. 그냥 호야한테 더 잘해주자. 그리고 고양이도 호야때문에 스트레스 받을지도 몰라.' 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직장이 멀어지면서 나와 동생은 집을 분리하여 각자 독립을 하기로 결정했고, 나의 외도 아닌 외도(?)를 몰랐던 반려견 호야는, 양육권을 가진 제 엄마인 동생을 따라 함께 가게 되었다.
2018년 11월, 난 집 안에 언제나 존재했던 털뭉치의 온기(?)가 사라진 곳으로 독립하였다.
낯선 공간, 처음 겪는 적막. 새로이 독립한 집은 좋은 집이었으나, 언제나 동물친구였던 내가 생존하기엔, 너무나 척박한 구조물(?)에 불과했다.
지 애미를 따라간 호야는, 동생의 지극정성으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르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어떤 면에서는 섭섭하기도 하였지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생도 적적하지 않을테고, 호야도 잘 적응했기 때문이다 :)
이제 나도 따뜻한 온기가 필요했다. 6개월 간의 망설임을 접고, 고양이를 들이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나니, 12월의 어느 겨울 날, 이끌리듯 찾아간 곳에서- 묘연을 얻게 되었다.
어쩌면 필연이었을 수도 있는, 먼치킨숏레그 아기고양이 달타냥과의 만남. 그렇게 삼십 후반에, 난생 처음으로 '정식 초보집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달타냥의 엄마, 달린집사다 :)
이제부터 내가 널 책임지고 지켜줄께.
앞으로 달타냥과의 일상이 기대된다.
달타냥의 총사님 (팬)이 되어주실래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