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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Oct 01. 2016

빅토리아 샤워

소시민적 아프리카 ep.08


 나는 본디 운동은 물론이고 걷는 것조차 싫어한다.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류의 일부는 조금 무기력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면 그 역할은 내 몫이다.

 아무튼 평균적으로 하루에 팔천 걸음 정도는 최소한 걸으라고 하는데 그조차 못 채우는 날이 부지기수다. 이런 나를 유일하게 걷게 만드는 이벤트는 여행뿐이다. 이러려고 평소에 아껴둔 것인지 하루에 몇만 걸음 정도는 가뿐히 걸어 다닌다. 평상시의 나, 특히 회사에서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보았다면 배신감을 느끼고 말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도 걷기를 자처한 것은 나였다.





만나다, 무지개





 호텔에서부터 택시를 불러 빅토리아 폭포 입구로 향했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면 한 바퀴를 돌고 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드물게도 카드결제가 가능한 곳이었다. 두 명이서 60달러를 내고서는 주섬주섬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곳에 살았었다는 코끼리의 머리 뼈


 빅토리아 폭포는 입장권만 사면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지만, 여행사를 통해서 오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간간이 여행사 직원의 설명을 귀동냥할 수도 있었다.



 이 곳에 '빅토리아 폭포'라는 이름을 안겨 준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동상이 서 있었다. 탐험가이자 선교사였던 그는 거의 평생을 아프리카에 바쳤다. 곳곳을 탐사하고, 노예제도를 반대하기도 했다. 외지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그의 탐험은 이어졌지만, 종국에는 그로 인해 얻은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지 어언 백오십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흔적은 아프리카 땅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빅토리아 폭포를 공유하고 있는 옆 나라인 잠비아의 도시 이름이 '리빙스턴'인 것처럼 말이다.



 코앞에서 본 잠베지 강은 삶의 원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인류는 예로부터 강 옆에 터전을 잡고 살아왔다고 한다. 이곳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 위로 작은 풀들이 푸르름을 뽐냈고, 사이사이 작은 벌레가 찌르르 윙윙 날아다녔다. 어디선가 그들을 노리는 새의 날갯짓이 들려오기도 했다. 이런 것을 아마 '먹이 사슬'과 '생태계'라고 부르는 것일 테다.



 조금 더 걷자 물보라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가방에 넣어온 우비를 꺼내 입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우비가 소용없다고도 말했지만 어쨌든 안 입는 것보다는 낫겠지. 카메라에도 단단히 방수팩을 씌우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조금씩 걸었다.


 이윽고, 아무 준비도 못한 채 소나기라도 만난 사람처럼 흠뻑 젖고 나서야 폭포와 무지개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헬기에서는 멀어 보이던 무지개가 손을 뻗으면 꼭 닿을 것 같은 곳에 있었다. 무지개의 끝을 찾아 뛰어가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무지개를 지켜보는 동안 어디서부터 오는지도 모를 물은 쉴 새 없이 뺨을 때렸고, 땅을 부술 듯 쏟아지는 물소리는 귀를 파고 들었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2월이니 한창 수량(水量)이 늘어날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분당 5억 리터의 물이 쏟아진다고 한다. 우리가 무지개를 보고 있는 동안만 해도 십억 단위의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물의 양을 가늠해 볼 지표가 고작 페트병 정도인 나의 빈약한 사고가 부끄러웠다.


 혼자가 외로웠는지 한쌍이 나란히 뜬 무지개는 프리즘으로 만들어 낸 것처럼 선명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빅토리아 폭포를 '하얀 물살을 따라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된다.'는 말로 묘사한 바 있다. 거대한 물보라와 무지개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백여년 전의 그에게 깊은 공감을 보낼 수밖에 없으리라.





사소한 모험이라 부르리





 풀을 헤치며 걸어가는 동안 폭우를 만난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했다. 열대지방의 스콜을 정면으로 맞는 기분이랄까? 조금의 홈이라도 있는 곳에는 여지없이 물이 고여있었다. 고개를 숙이자 모자에서 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사람이 평소에도 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지곤 한다. 이곳에서는 그 느낌이 배가 되었다.



 별도의 안전장치가 거의 없이 그대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더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듯이 아래로만 향하는 물줄기는 우리를 집어삼키는 듯 했다.



 흠뻑 젖은 내가 마음에 들었다.


 예전부터 한번은 꼭 빗속에서 우산 없이 놀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이룰 수 있는 간단한 희망사항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말 잘듣는 어린이였던 나에게는 좀처럼 쉽게 실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금 더 커서는 비에 젖어버린 신발과 옷을 처리하려면 꽤나 골치아플 거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늘 앞섰다.


 차라리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를 늘 바라왔다. 그러기 위해서 여행이 이따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위해서, 그 상황 속의 나를 만나기 위해서.



 철벅거리는 바닥을 아무렇게나 밟았다. 물이 여기저기로 튀었고, 나는 웃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조금은 소심한 나는 이걸 '사소한 모험'이라고 부르기로 정했다. 일년에 한두번쯤 있는 소중한 여행에서만 고삐를 놓을 수 있는 나에게 아주 사소하지만 결심이 필요한 일들. 조금은 귀여운 일탈.



 다리 저쪽은 잠비아, 다리 이쪽은 짐바브웨라고 했다. 다리 위에는 번지점프대가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떨어지기도 했다.


 아, 이건 모험이니까 하지 않을래.


 어떤 친절한 관광객이 찍어준 제법 부부같아 보이는 사진엔 웬 비에 쫄딱 젖은 생쥐 두 마리가 있었다. 한참을 웃고 말았다. 사소한 일탈을 안겨준 짐바브웨를 벌써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애써 지우며, 그렇게 깔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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