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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Oct 03. 2016

우리는 예언자가 아니니까

소시민적 아프리카 ep.09


 아프리카를 가기로 결정했을 때 무엇보다 기대했던 것은 사파리 투어였다. 솔직히 말하면, 여태까지의 일정은 탄자니아에서 하게 될 사파리 투어의 애피타이저 정도로 생각하며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예상보다 남아공과 짐바브웨가 떠나기 아쉬울 정도로 좋았지만, 어쨌든 가장 많은 기대를 하고 그만큼 많은 예산을 투입한 곳은 탄자니아였다. 떠나는 마음이 기대로 가득 차 무거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짐바브웨에서 탄자니아로 가는 여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공항까지 가서 하루를 묵은 후 다시 르완다로, 마지막으로 르완다에서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걸리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요하네스버그의 악명 높은 범죄율이요, 두 번째는 르완다의 비자 문제였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 진다





 내 짧은 생에 이용해 본 비행기 중 가장 낡은 비행기에 실려 요하네스버그로 향했다. 어찌나 낡았는지 앞 테이블의 이음새가 떨어져 흉하게 덜렁거리고 있었다. 테이블 안쪽이 스티로폼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딱히 인생에 쓸모없는 정보를 얻었다.


 착륙이 가까워지자 요하네스버그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수영장이 딸린 널찍한 대저택의 높은 담장 밖으로는 두 다리 쭉 뻗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눈으로 보는 빈부격차였다.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범죄가 깃든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상어 떼처럼.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 지고, 막힌 것을 보면 무너뜨리고 싶어 진다. 인간의 본성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담장 밖의 사람들이 느낄 분노와 박탈감을 내가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담장으로 가로막힌 삶은 비참할 것이다. 필히 그럴 것이다.


넓은데다 시설이 좋았던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하면 오후 즈음일 터라 원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까운 곳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인터넷에서 본 요하네스버그의 범죄율 그래프가 머릿속을 빙빙 맴돌아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라는 이곳을 돌아다니기에 나나 김남편은 너무나 소심했다. 밖에 나가는 순간 금방이라도 총에 맞을 것 같은 나쁜 상상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신혼여행에서 총에 맞기는 싫었다.


 결국 얌전히 예약해둔 호텔로 직행하기로 했다. 김남편이 분명 걸어갈 수 있을 정도 거리에 있는 호텔을 잡았다고 했는데 실제로 도착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공항 소속 택시를 잡아탔더니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150 란드(한화로 15,000원 정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속이 쓰렸지만 우리의 신변 안전을 돈으로 산다고 생각하며 지불했다. 그러나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억울하게도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공항 셔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르는 건 때때로 큰 죄다.


방 창문 너머로 보이던 요하네스버그의 모습


 호텔 안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말라리아 예방 약인 말라론을 처음으로 복용했다. 위험지역에 도착하기 이틀 정도 전부터 복용을 시작해야 하는 약이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몸이 뜨겁고 꼭 술이라도 취한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도시에서 밖으로 나가 노는 것은 내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여행 후반이 될수록 냉장고 바지만 주구장창 입게 되었다.


 나의 소심함이 밉기도 했지만 덕분에 총에 맞지 않고(?) 무사히 요하네스버그를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새벽같이 일어나 호텔 무료 셔틀 서비스를 이용해 공항으로 향했다. 머리가 맑았다. 약을 먹고 일찌감치 쓰러져 잠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시나 아주 작은 르완다 공항. 수트를 들고가는 사람 덕분에 아주 힘든 비행이 되었다.


 안전이라는 첫 번째 관문은 무사히 통과했고, 두 번째 관문인 르완다 비자 문제가 남아있었다. 나미비아에서 당한 바가 있는지라 요하네스버그 호텔에서 급하게 인터넷으로 발급을 신청했는데 제대로 처리된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로 전화해보았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수록 더욱 걱정이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하쿠나 마타타(Everything is OK)"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걱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하니까.


 아무튼 찝찝한 기분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복도 건너 대각선 방향에 앉은 사람이 무언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기라도 한 건지(사진 속 수트를 들고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 비행 내내 팔걸이에 걸터앉아 쉬지 않고 그에게 말을 붙였기 때문이었다. 안전벨트 사인이 켜져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승무원들 중 누구도 그들을 제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쾌했던 기분은 어디로 사라지고 소음 공해에 귀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한계에 다다를 무렵 드디어 르완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직원은 환승한다는 우리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퉁명스러운 직원은 족히 천 페이지는 넘어 보이는 매뉴얼 북을 뒤적이더니 눈도 마주치지 않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지나가라는 뜻인 것 같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잘 풀린 것 같았다.



 비행도 끔찍했지만 공항도 못지않았다. 분명 게이트 오픈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 방송도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 앉은 사람들 웅성웅성 대며 불안해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직원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Not yet."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결국 오픈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게이트가 열렸다. 그마저도 방송은 없고 입구 앞에 선 직원이 소리를 질러댔다.

 아프리카 여행은 기대치를 낮춰야만 하는 여행이었다. 무사히 비행기만 타고 뜨면 되지, 뭐.





모든 일은 지나고 나서야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가 무척 흔들렸다. 여간해서는 멀미가 나지 않는 나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그로 인해 착륙 시간도 한 시간 가량 뒤로 미뤄졌다. 숙소에 Airport transfer service를 요청해 두었던 터라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도 아마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을 것이다. 우리 잘못은 아니지만 미안했다.

 역시나 작은 공항이었기 때문에, 펜으로 대충 휘갈겨 쓴 내 이름을 들고 있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인사말로 비행이 어땠냐고 물었고 나는 "Terrible"이라고 답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날씨가 정말 안 좋았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땅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래도 한결 갠 모양이라 다행이었다.

 드라이버는 영어를 아주 잘했다. 자신의 이름을 "아마니"라고 소개한 그는, 그 이름의 뜻이 '평화'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칭찬을 받는 것에도, 하는 것에도 능숙지 못한 나는 아주 좋은 이름이라고 겨우 우물쭈물 말할 수 있었다.



 숙소는 공항에서 제법 멀었다.

 가는 길에 갑자기 미리 기념품을 사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니에게 혹시 커피를 살 만한 곳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미 지나쳤다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다시 돌아가 줄 수 있냐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 돈은 더 내야 했다.(아마 그 돈은 아마니의 주머니로 그대로 들어갈 것이다.)

 그는 우리를 탄자니아에서 꽤 유명한 커피 체인점인 "Africafe"로 데려다주었다. 현지인과 외국인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예쁜 천으로 포장된 커피 가루를 여러 개 샀다.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커피를 사고 나와 무심코 찍은 사진이었다. Africafe가 있던 도로를 찍으려고 했었다. 그때는 "i"라고 표시된 곳이 탄자니아 관광청이란 사실을 몰랐다. 우리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일이 생길 줄도 몰랐다.

 여행이란 자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곤 한다. 나중에 보면 무릎을 탁, 칠만한 일들이 겪는 동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예언자가 아니므로, 모든 일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닫는다.


 뭐, 이걸 알게 된 건 조금 나중의 일이니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마니가 음악을 틀어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처음 들어본 흥겨운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어깨를 들썩였다. 그도, 음악도 좋았다.

 숙소는 공항에서도, 시내에서도 멀었다. 그래도 참 아늑한 곳이었다. 그래서 후에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에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고 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그때 당시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른 채 다음날 떠날 사파리 투어를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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