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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Aug 14. 2016

빅토리아 폭포, 날다!

소시민적 아프리카 ep.06


 나의 암울한 걱정은 끝날 줄을 몰랐다.

 비행기가 무사히 이륙하기만 하면 클리어 될 것 같았던 내 걱정 리스트에는 한 줄이 더 추가되었다. 짐바브웨에서 만약 우리를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아마도 일련의 사태를 겪고 출입국에 트라우마가 생긴 탓일 테다.


 스트레스를 사서 받고 있던 나를 달래듯 비행기 창 밖으로 광활한 대지가 펼쳐졌다. 드문드문 잘못 흩뿌린 물감처럼 나무가 서있는 끝없는 땅.



 학창 시절, 한국지리 과목에는 영 소질이 없던 나를 더더욱 괴롭게 했던 것은 지도에 무수히 그어진 산맥들이었다. 지도 밖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는 고개를 돌리면 어디에서나 산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풍경은 일견 현실적이지 않았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지평선이 보일 것만 같은 대지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이므로.

 비행기가 차츰 땅으로 가까워질수록 나의 감탄사도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와. 우와. 이야. 캬아.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폴스 국제공항 역시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작았다. 그에 맞추어 내리는 사람도 적었지만 어쩐지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직원이 일일이 손으로 적어 *비자를 발급해 주어야 하는 탓이었다. 앞에 선 사람들은 단체 관광객이었다. 노련한 가이드가 진작부터 자리를 맡아 두었다. 여유를 부리며 내린 죄로 우리는 줄 가장 끝에 서야 했다.


 잠깐 소란이 일었다. 이탈리아 남자 둘이 입국을 거부당해 항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이탈리아 영어와 아프리카 영어는 토익 리스닝 난이도 극상에 가까웠다-얼핏 들으니 출국 일정이 없어 받아줄 수 없다는 것 같았다. 관광을 위해 왔다고 아무리 주장해 보아도 공항 직원은 완강했다. 결국 그들은 방금 내린 비행기를 타고 나미비아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보는 내내 섬뜩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였을 수도 있다.

 나미비아에서의 악몽이 따라붙었다.


 내 불안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줄은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염없이 기다리던 우리에게 무뚝뚝한 직원이 다가와 옆의 창구로 우리를 데려갔다. 순간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싶어 놀랐지만, 그저 단체 여행객이 아닌 우리가 불쌍해 보였던지, 직원이 따로 입국심사를 해준 것이었다.

 드디어 공식적으로 짐바브웨에 도착했다. 더는 쫓겨나거나 공항에 갇힐 염려가 없는 완전한 입국이었다.


(*짐바브웨는 비자가 필요하지만 공항에서 바로 발급받을 수 있다. 재입국이 가능한 멀티플 비자와 재입국이 불가능한 싱글 비자로 나뉜다. 가격은 각각 USD 50, USD 30)





천둥의 연기, Mosi oa Tunya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쉴 틈이 없었다. 이곳까지 온 이유인 빅토리아 폭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늘 자유여행을 다니던 우리였지만 아프리카에서는 투어를 이용해야 했다. 특히 첫 번째로 경험한 투어인 '빅토리아 폭포 헬기투어'는 여행사가 아니고서는 절대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무지막지한 굉음을 내며 오르내리는 헬기를 몇 대쯤 보내고서야 우리가 탈 헬기가 도착했다. 파일럿을 제외하고 헬기에 오른 사람은 총 네 명이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헬기는 가볍게 떠올랐다. 활주도 없는 심플한 비행이었다.



 너무나 가벼운 비행 이어서일까 오히려 불안했다. 이거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냐?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헬기는 머얼리 물보라가 이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균열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머릿속 형용사를 아무리 뒤져 보아도 적당한 말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인간은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 이곳에 있었다.

 순간 헬기의 소음이 멈춘 듯했고, 균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구름이 내게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어떤 풍경은 너무나 대단해서 두 눈으로 보지 않으면 상상이 되지 않기도 한다. 적어도 나의 조악한 상상력으로는 그랬다.

 이토록 선명한 무지개를 보기 전에는 크레파스로 꾹꾹 눌러 그린 빨주노초파남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헬기는 천천히 분기점을 돌아 선회하기 시작했다. 헬기투어에 주어진 15분은 야속할 정도로 짧았다.



 수많은 동물들의 고향이자 원주민들에게는 천둥의 연기(Mosi oa Tunya)라고 불렸던 이곳.

 탐험가 리빙스턴에 의해 발견되어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 '빅토리아 폭포'가 되었지만 천둥의 연기라는 이름이 이곳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도 덜도 아니었다. 정확히 15분이었다. 나의 여운은 딱 15분으로 끝내야 했다.

 헬기는 지상에 두 발을 내디뎠고, 다음 사람들이 나와 같은 전율을 느끼기 위해 서둘러 탑승을 시작했다. 한 사람에 150달러라는 비용은 우리에게는 꽤나 부담되는 액수였지만, 이런 특별한 경험을 돈으로 환산한다고 하면 오히려 값싸보이기도 했다.



 픽업차량이 올 때까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지나자 직원이 우리를 작은 사무실로 불렀다. 예의 그 DVD를 파는 것이리라. 미리 읽어본 여행기에 따르면 헬기를 타기 전후의 영상과 사진을 급하게 편집해서 DVD로 판매한다고 했다. 퀄리티가 높지 않지만 어쩐지 다들 사게 된다고 했는데, 우리도 어쩐지 사버렸다. 타인의 눈으로 본 우리가 웃겨서였을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볼품없는 DVD 속 우리가 그리워질 날이 오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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