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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Jun 03. 2024

출발하기 전 기차

빛나는 순간을 위한 어둠.

 연극과 같은 공연을 볼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무대의 뒤이다. 이 자리는 VIP 초청장으로도 구할 수 없고, 오로지 그 연극의 스탭이 되어서야만 들어갈 수 있다. 사실 그 어떤 저가의 좌석보다도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무대를 보는 것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즐기는 관객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공연의 민낯을 관조할 수 있는 이 매력은 특이한 취향 포인트이기도 하다.


 백스테이지에는 무대를 위해 치뤄야할 비용들이 모두 서려있다. 헌신, 고됨, 혼란, 긴장, 분주함, 어둠… 무대에 올라가지 못하나 공연을 빛내기 위해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백스테이지에 배치된다. 여유로운 연기를 펼친 이들도 무대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다음 퍼포먼스를 위해 어둠 속에서 바쁘게 옷을 갈아입고, 스탭들은 뛰어다니며 소품을 준비한다. 이 백스테이지의 사람들이 무대에 발 딛는 것이 허용되는 것은 오로지 암전된 잠깐의 순간이고, 바닥의 희미한 야광 테이프에 의존해 해야할 것을 하고 사라져야 한다. 이 화려하지 않은 순간들이 무수히 받들고 있기에 공연은 빛날 수 있고, 사람들에게 효용을 전해줄 수 있다.


 용산역 근처의 높은 건물에서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던 어느 날이었다. 내려다보이는 무수한 철로들 가운데 한 곳에는 빈 고속철이 멈추어 있었다. 항상 분주히 지나쳐가는 기차들이 만들어내는 동적인 모습만이 익숙해서인지 한참 멈춰있는 열차는 시선을 붙잡았다. 그 창문 안에서는 비어있는 좌석들과 그 공간을 바쁘게 청소하고, 상태를 체크하는 직원 한두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멈춰선 순간의 공간은 백스테이지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많은 순간들 역시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제공되기 위한 크고 작은 공연이기에, 백스테이지는 일상 속에서도 수없이 돌아가고 있다. 


 백스테이지는 미묘한 아련함이 감도는 공간이다. 그것은 공연의 화려함을 위해 헌신해야 할 화려하지 않는 모든 것들이 만드는 대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공간에 서있으면 끝을 모를 듯한 그리움이 맴돈다.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에 맴도는 감성처럼. 그렇기에 사람들은 공연의 화려함을 추구할 뿐 백스테이지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나 성공적인 공연은 충실한 백스테이지 위에 존재한다. 명화속에서 탁한 채도의 배경 속에서 선명한 주제부가 더욱 부각되듯, 무대 뒤의 고충과 노력은 무대를 빛낸다.


 화려하지 않은 지금은 삶의 백스테이지일수도 있다. 주목받던 시간에 비한 대비와 향수에 지금이 공허할 수 있지만, 어쩌면 이 시간들로 인해 곧 도래할 공연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백스테이지는 아련하지만 또 잔잔한 감동이 전주처럼, 여운처럼 흐르기도 한다. 이 잔잔함이 내가 백스테이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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