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상호작용에 관하여.

by 달우

한파가 여느때보다도 극심한 날이었다. 온몸을 덮는 패딩을 입고도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냉기에 온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그 수축을 유지하느라 피로한 가운데, 번화가에는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일행들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추위에 불평하는 듯한 찡그림, 고래를 푹 숙인채 무표정함, 그 와중에도 옆의 일행을 사랑스럽게 보는 미소 등등으로 다양했다. 한가지 공통점은 그들 모두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나누며 혹은 나누기위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극한의 한파 속에서도 인간은 교류를 멈추지 않는다.


소통에는 언제나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그 목적들이 누적되어 지금의 인간 세상을 이루었을 것이다. 원시의 것은 생존을 위함이었겠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발전, 공감, 사랑 등 다양하게 분화했다. 소통의 양식 역시 몸짓에서 언어로 나아가서는 예술과 같이 정의되지 않은 방식들까지 발산해왔다. 바야흐로 다양한 목적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며 답을 찾아나간 것이 인간의 역사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아직도 끊임없이 목적을 놓지 못하고 상호작용하며 세상을 탐험한다.


이 무한한 목적들 중 흥미로운 것은 “공감”이다. 소통이 산업화된 형태인 콘텐츠 시장에서 자주 꼽히는 성공 요인은 다소 모순적이게도 색다름과 공감이다. 차이와 연결되는 색다름과 공통과 연결되는 공감이 함께 공존하는 셈이다. 이는 개별과 보편으로 심화되어 많은 제작자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이들은 상호 반목하지 않고, 오히려 보완적이다. 개별적인 존재가 보이는 다양한 차이는 무엇이든 되어 어떤 것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신감이다. 보편적인 인간이 공유하는 마음, 즉 공감은 이렇게나 다른 이들이 개별의 차원을 넘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두 요소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 개별이 배제된 보편은 전체주의로, 보편을 배제한 개별은 아나키즘이 된다. 결국 두 요소의 균형과 절묘한 결합이 좋은 세상의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그것을 버무리는 것이 인간 소통이고 교류며 상호작용이다. 발전의 목적은 생존을 위한 것의 연장선이다. 이는 존재를 말살하고자 하는 어떠한 것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외향적이다. 공감과 사랑 역시도 생존의 연장선에 있지만, 인간끼리의 영역 혹은 개인 내면의 영역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내향적이다.


종래의 산업은 외향적인 영역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생존의 결론은 열역학법칙 안에서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관측하지 못했기에 반복되고 무한하며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 안티테제로서 내향적인 산업은 콘텐츠를 비롯한 문화 산업으로 태동하여 각광받고 있다. 미래 지향적인 외향 산업과 달리 내향 산업은 현재 지향적이다. 흥미로운 시대의 흐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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