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돌아온 무기력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모두 마치고 돌아온 지도 벌써 3개월이 다되어간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좋았다가 나빴다가 격차는 있지만 또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 아주 오래 겪어온 증상이지만 매번 대처에 능하지는 않다. 그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근데 대체 언제, 어떤 계기로?! 요동치며 기다리는 수밖에…
호주에서 돌아온 이유는 비자 만료라는 이유가 컸지만 왠지 그때쯤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짧은 영어로 아등바등 말해가며 수백 명의 손님들을 대하는 것도, 적은 수입으로 높은 생활비를 내가며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더 이상 힘에 부쳤다. 나를 열심히 굴리고는 있는데 아무런 방향과 생각 없이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호주에서 일하는 것은 높은 시급, 한국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 스케줄의 변동성, 짧은 급여 주기 등 대부분의 면에서 한국보다 나은 점이 많았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라운지 어텐던트, 바리스타 등을 해볼 수 있었다. 일하던 카페의 사장님도 나에게 학생 비자로 전환하여 본인들과 함께 오래 일하기를 권했다. 귀국 당일에도 그는 나에게 언제든지 너를 환영하니, 돌아오고 싶을 때 주저하지 말고 돌아오란 말을 남겼다. 민망할 정도로 감사했지만 궁극적으로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호주로 떠났을 때도 큰 계획과 목표 없이 무작정 떠났는데,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냥 또 돌아와 버렸다. 그때만 해도 20대 중반의 언저리였는데 이제는 나도 20대 후반이 되었다. 한국 사회가 아무리 전보다 편견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아직 숫자가 주는 압박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제는 어딘가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미래를 그리며 살아야하는 나이가 바로 내 나이가 된 것이다.
사실 내가 내 자신에게서 제일 크게 느끼는 부끄러움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것보다 아직도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하기 싫은 일은 많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이제 전처럼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내린 임시처방전은 브런치스토리 창을 켜는 것이다. 흘러넘치지 못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된 생각들을 그냥 끄적이다 저장한다. 사실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또 들거나,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그 외 다른 잡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딱 이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뒤죽박죽 생각인 만큼 글도 뒤죽박죽이라 ‘발행’ 버튼을 누르기가 겁나는 글이 차고 넘치는 와중에 브런치스토리에서 또 알림이 왔다. 저장된 글을 어서 발행해 보라는…
나의 첫 긴 글이 이런 울적한 내용이길 바라지도 않았고, 이 글로 나의 내일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도 알지만 부끄러워 며칠 내내 미루던 ‘발행’을 눌러보기로 했다.
어쨌든 이 글도 아무 일일 수는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