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수필은 쓰고 싶지 않았다
읽는 사람은 결국은 쓰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임을 15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된 나의 글쓰기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그때의 나는 소설을 썼다. 소설을 많이 읽었으니 소설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프링 노트를 펴놓고 손가락이 저릴 때까지, 손목이 아플 때까지 글을 써 내려갔다. 가끔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을 땐 흔적 없이 깨끗하게 수정할 수 없어서 몇 줄에 걸친 엑스자를 크게 그으며 속상해했다. 쓰고자 하는 주제는 다양했지만 인생 11년 차인 나에게 다양한 경험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쓴 글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경험을 보고 들으며 간접경험 한 것을 쓰거나 상상해서 쓴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아직 모르는 게 가득했다. 모르는 걸 아는 척 쓰는 게 어려울 때는 그냥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썼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여도 그냥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세계의 이야기를 썼다. 그때의 나는 그냥 쓰는 행위가 재미있어서 썼다. 내 안에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형체를 갖게 되는 것이 재미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글을 좋아한다기보단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였고, 글은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계속 자라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구는 펜과 노트에서 컴퓨터로 바뀌어 갔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은 간편했다. 흔적 없이 글을 토막 내고 수정할 수 있었으며, 손가락이 저릴 일도 거의 없었다. 독자층도 넓어졌다. 공책으로 쓰던 시절엔 일부의 소설은 학교에서 공개적으로 돌려 읽는 소설이 되었다. 친구들은 댓글처럼 코멘트를 써주기도 하고, 다음 편을 더 써달라며 대면 형태로 독촉하기도 했다. 컴퓨터로 쓰는 글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릴 수 있었다. 얼굴도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독자들이 조횟수의 형태로 다녀간 흔적을 남겼다. 아주 가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읽었던 것은 당시 인소라고 불리던 로맨스 소설이었으므로 나도 로맨스 소설을 썼다. 연애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상상해서 그런 글을 썼다. 한동안 쓰지 않다가 더 이상 내 취향의 인소를 읽을 수 없게 되자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내가 읽기 위하여 내가 썼던 것이다. 나는 이런 형태를 자급자족이라고 불렀고, 그때의 글은 보통 공개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내 클라우드와 어느 외장하드에 잠들어 있다.
어떤 시기에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쓸 때마다 괴로웠기 때문이다. 글 때문에 괴로운 것은 아니지만, 괴로워서 글을 쓰게 된 것이겠지만, 순서가 어떻게 되든 글을 쓰는 동안 괴로움을 느끼고 있으므로 글을 쓰는 날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욱 자주 썼다. 그 시기쯤부터는 옛날처럼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는 쓰지 않았다. 그때의 글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허공에 흩뿌리는 행위와 같았다. 쓰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는 어떤 날들에 그런 글을 주로 썼다. 게워 내듯이 글을 쓰고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작정으로 비밀번호까지 꼭꼭 걸어 숨겨두었다. 그런 행위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었다. 자주 쓰는 시기가 있었고, 가끔 쓰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다 점차 글을 쓰는 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읽는 사람이다. 보통 읽는다는 것은 가끔은 읽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고 싶다. 미친 듯이 읽어치우던 시절이 있었고, 1년에 단 한 권도 읽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쓰는 것 또한 종종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최근엔 더 이상 이야기를 쓰지 않지만, 기록을 위한 용도로는 여전히 자주 쓰는 걸 보면 그렇다. 나는 이제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손목이 아플 때까지 막힘없이 술술 글을 써 내려가던 때와는 다른 종류의 작가가 되었다. 글은 흔적이 남는 것이고 글에는 내가 많이 담기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될까 봐, 나중에는 지우고 싶은 어떤 것이 영원히 남게 될까 봐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 이유로 나는 수필 작가는 절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쓴다면, 나는 내가 아닌 가상의 인물, 여기가 아닌 가상의 세계에 대해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가상의 인물, 가상의 세계를 쓰더라도 결국 거기에는 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글을 쓴 나에게는 소설이 수필이나 다름없게 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이든 소설이든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내가 쓴 글이라면 내가 들어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는 종종 글을 쓰고 싶다. 쓰는 시간이 괴로워서 쓰고 싶지 않으면서도 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날이 아니어도 다시 글을 종종 쓰고 싶어진다. 여전히 읽는 시간이 쓰는 시간보다는 많겠지만, 아무튼 나는 다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