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자마자 떠날 계획부터 세웠다

왜냐하면 지금 죽을 수도 있으니까

by 달현



예정된 퇴사였고, 정확히는 예정보다 늦은 퇴사였다. 11개월 2주 정도가 원래의 계약기간이었는데, 감사하게도 3달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덕분에 실업급여에 퇴직금까지 받고 퇴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생의 첫 직업. 내 생의 첫 직장. 졸업이 늦은 만큼 처음도 늦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느 사회 초년생들처럼 부딪히고 깨지고 적응하고 수긍하고 느리게 성장하며 약 1년을 그 회사에서 보냈다. 정말로 당장 뛰쳐나가고 싶던 적도 있었다. 다방면으로 괴로워서 출근은 물론이고 퇴근조차 즐겁지 않은 때가 있었다. 가장 심했던 시기에는 금요일에 퇴근하면서도 월요일에 출근할 것이 걱정되어 울면서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랬던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까마득해 보여도 사실은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시기를 지나 여러 가지에 무던해지고 무뎌진 모습의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퇴사할 즈음에야 이제 좀 할 만한데, 이제야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질문하고 어떻게 요청해야 하는지 알 것 같은데 싶어서 아쉬운 마음까지 살짝 들 뻔했다.


당초에 예정되었던 퇴사 몇 달 전 내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운 좋게도 그 회사는 계약직 직원에게도 단체보험을 적용해 주고 병가를 쓸 수 있게 해 주어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았다. 정확히 11일간 병가를 내고 주말을 포함하여 13일을 쉬고 출근했다. 수술한 지 열흘쯤 지나고서였다. 나의 병은 다른 무서운 병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예후도 좋고 치료 방법도 간편하니 그래도 다행이라고들 말했다. 그럼에도 전신마취 수술을 해야 했고, '괜찮은 병'이어도 지금이 아닌 몇 년 뒤에 알았더라면 더욱 나쁜 상황이었을 수 있다. 아픈 것이 억울했다. 내 생활 습관이 그렇게 올바르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엄청나게 나쁠 것도 없었고, 탓할 곳은 스트레스의 주범이던 회사뿐이었다. 한편으론 아픈 것은 억울했으나 지쳤던 와중에 병가를 내고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사실은 좋았다. 철없게 들리겠지만 진심은 그랬다.


운이 좋아서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병을 키워 죽음에 이르렀을 수도 있고, 꼭 그게 아니어도 죽음이 어디에나 있다고 느꼈다. 나는 갑자기 상상하지도 못한 누군가의 실수로 죽을 수도 있었고, 혹은 누구도 실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사고에 휘말릴 수도 있다. 내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고 느낀 이후로 언제라도 죽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 시기에 조금은 즉흥적인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영영 못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떠나는 날짜는 퇴사하고 일주일 뒤. 아무래도 출퇴근하며 준비하긴 어려우니 일주일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돌아오는 것은 그로부터 24일 뒤. 2주 이상, 한 달 이내 중 가장 비행기 값이 싼 날짜로 골랐다.


만약 갑작스럽게 생이 끝난다면, 죽음이 완전히 덮치기 전까지 생각할 몇 초의 시간이 남아 있더라면 내가 후회할 것은 망설이다 떠나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평생을 살다가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 생각하고, 이게 모든 길의 전부인 줄 알고 죽는 일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서 가장 멀리까지 가보기로 했다. 거기서 내가 해보고 싶던 것들을 하고 싶었고, 여기와는 다른 세상과, 여기와는 다른 길을 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공연들을 본고장에서 듣고, 유튜브에서나 보던 유명하고 오래된 콘서트홀에 앉아 삶을 맘껏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하자마자 떠날 비행기표와 콘서트 티켓을 일단 샀다. 망설이기만 하다가 끝이 날까 봐. 결제하고 나면 낙장불입. 이 결정을 돌이키는 데에는 수수료가 든다. 그러니 마음 바꾸기는 이제 유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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