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지침서를 ‘발췌독’하는 이유
내 아이 전문가는 엄마
책 욕심이 많은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 한 번 책에 빠지면 침대에 책을 쌓아놓고 읽어치웠다. 엎드려 읽다가, 기대앉아서 보다가, 이마저도 허리가 뻐근해지면 드러누워서 마지막 장까지 넘겨야 직성이 풀렸다. 서점 가는 날도 손꼽아 기다렸다. 책으로 둘러싸인 서점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가 좋았다. 내 방 책장에 아직 읽지 못한 책이 가득했지만, 또 책을 사들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책 읽는 습관이 바뀌었다. 정독보다는 발췌독이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출간되는 신간을 훑어보고 소개할 만한 책을 골라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긴, 일종의 업무 패턴이다. 제목과 표지를 살피고 목차를 펼친다.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곳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목차를 토대로 기사 쓰는 데 필요한 부분만 가려내 읽다 보면 어렴풋이 뼈대가 보인다.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고 싶은 책이라면, 일을 끝내고 다시 첫 장부터 펼쳐 정독한다.
육아를 소재로 한 신간이 넘치는 요즘, 아이 있는 집마다 육아서 두세 권쯤은 책장에 꽂혀 있을 것이다. 오감 놀이, 유아 식단, 책 읽기, 대화법…. 주제도 다양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평범한 엄마, 아빠가 저자라는 점. 똑소리 나게 아이를 기르고 가르치는 능력자 부모가 많다는 방증이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무렵, 엄마들의 ‘수면 교육 지침서’를 정독했다. 출산 후 몸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시간마다 수유하는 일은 정말이지 고통스러웠다. 잠 부족은 스트레스를 불렀고 우울감도 따라왔다. 아이와 잠자리를 분리해 수면의 질을 높여야 했다. 책이 이끄는 대로 열심히 실천했다. 신기하게도 며칠 만에 아이는 엄마 없이 혼자 잠드는 듯했다. 더는 바랄 게 없었다. 그만큼 절실했다.
이런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수가 생기는 게 육아였다. ‘원더윅스(아기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로, 평소보다 더 울고 보채곤 한다)’라는 무서운 녀석이, 이 앓이가, 성장통이 때마다 찾아온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잠들면 깨고, 잠들면 또 깨고, 이렇게 밤을 새우면 참을성이 바닥을 보였다. 그렇게 몇 달을 수면 교육과 싸웠다.
남들은 다 성공했다는데, 왜 나는, 왜 우리 아이는….
책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급급했던 수면 교육은 엄마를 무능하게 만들었다. 나 때문에, 내가 부족해서 실패했다고 자책했다. 끝내 성공 사례에 등장하는 ‘수면 교육 우등생’과 아이를 비교하기에 이르렀다. 독이 된 셈이다.
기질과 성격이 같은 사람은 없다.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조차도 다르다. 먹이고 돌보고 안아주고, 또 교감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건 엄마일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결국, 엄마다.
자칭 타칭 육아 고수들의 성공기는 여전히 부럽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무릎을 칠 때도 있다. 다만, 책 속에 등장하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은 ‘나’도 ‘내 아이’도 아니라는 것을 상기한다. 나와 다른 환경, 조건, 상황이라는 걸 전제하고 접근한다. 우리에게 맞는 내용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변형하고 활용해야 그 진가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려 읽는다. 육아 관련 지침서는 더 까다롭게 ‘발췌독’한다. 엄마의 눈으로 내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만 골라낸다. 육아 능력자는 못 되지만, 내 아이에 있어선 전문가라는 ‘엄마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이 글은 조선뉴스프레스 온라인 매체 '마음건강 길(mindgil.com)'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