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명의가 내린 처방보다 용했던 ‘그’ 시간

치료보다 치유(healing)

by 김명교

하늘이 잔뜩 흐려진 걸 보니, 한바탕 비가 쏟아질 모양이다. 전날부터 내 몸은 비를 예고했다. 일하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려면 허리를 꼿꼿하게 펼 수가 없었다. 살짝 주먹을 말아 쥐고 통통, 허리를 다독였다. 왼쪽 엄지발가락에도 저릿함이 느껴졌다. 허리를 세우자, 두둑 골반 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 가는 걸 더는 미루지 말라는 신호였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삐걱대는 몸을 단속해야 했다.



급한 대로 점심시간을 기다려 걸음을 재촉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식사하러 나가던 선배를 만났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나 봐?”

“아뇨,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요.”

“왜 이렇게 몸이 약해~. 조심히 다녀와.”


참 이상하게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마다 이 선배와 마주친다. 그러니 나는 늘 피로에 찌들고 잔병치레로 골골대는, 짠한 후배였다. 그냥 외부 미팅 나간다고 할 걸 그랬나, 후회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나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싶다.’



지난해 8월 의사는 ‘추간판 장애로 인한 좌골신경통’, 허리디스크를 선고했다. 발가락 끝이 저리다 못해 압통이 느껴지지 않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허리 근육통 정도로 생각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린 건 손에 꼽았고, 몸에 무리일 정도로 신체 활동을 한 적도 없었다. 책상에 앉은 자세가 바르지 않은 탓인가, 몸을 상하게 한 원인을 찾으려 애썼다. 병원에 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심상찮은 상태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았다. MRI 결과를 앞에 두고 의사와 마주 앉았다.


“육아 중이시죠?”



잊고 있었다.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던 갓난아이는 이제 몸무게 15㎏을 넘어서는 어린이로 자랐다는 사실을. 나의 체력은 약했지만, 엄마의 저력은 그 무게조차도 가벼이 들어 올렸다는 것을. 의식 없이 반복했던 육아 습관은 결국 내게 허리디스크를 안겼다.



몸에서 울리는 경보를 모른척해 왔다. 긴장성 두통, 만성 근육통, 거북목증후군에 이제는 허리디스크까지…. 내가 겪고 있는 이것들은 감기나 상처처럼 약을 먹고 바르면 완전히 괜찮아지는, ‘완치’란 없는 질환이다. 열심히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은 적도 있었다. 호전됐다 싶으면 스트레스로 다시 나빠지기를 여러 번, 불편함과 통증에 조금씩 무뎌졌다. 눈치도 보였다.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가려면 일주일 내내 진료 과목을 바꿔가며 ‘병원 투어’를 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평생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면 어르고 달래며, 가끔 안부도 물으면서 더 나빠지지 않게 유지하자고 마음먹었다. 드라마틱하게 나아질 수 없다면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낫다고 합리화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고 마음 졸이며 치료받기보다 일과 육아 사이, 잠시 쉬어가며 숨통을 트자 했다.



우습게도 그 방법은 점심시간에 있었다. 마음 맞는 사람과 즐기는 잠깐의 수다가 필요했다. 해야 할 일을 살짝 내려놓고 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이 간절했다. 여기에 맛있는 음식과 진한 플랫화이트 한 잔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치유(healing)의 시간’. 어떤 명의가 내린 진단과 처방보다 용했다.



어느 날 몸이 마음에게 물었다. 난 아프면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주는데 넌 아프면 누가 치료해주니? 그러자 마음이 말했다. 나는, 나 스스로 치유해야 해.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이 아플 때 유용한 치유법을 하나씩 갖고 있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고 화를 내고 웃고 울고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고 여행을 가고 마라톤을 한다. 가장 최악인 것은 그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중에서>



병원 갈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가 아니다. 시간을 쪼개 쓰는 워킹맘에게는 우선순위가 있다. 만성질환의 통증을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과 육아로 쪼그라든 마음을 치유하고 다독일 시간이 더 절실할 때도 있다. 몸은 마음을 따라가는 법이니까.



*이 글은 조선뉴스프레스 온라인 매체 '마음건강 길(mindgil.com)'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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