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꽃다발에, 자존감이 채워졌다

긍정 정서 키우기

by 김명교

“엄마, 오늘 엄마 생일이에요?”



내 생일을 앞두고 아이는 무척 들떠 보였다.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고 손뼉을 쳤다. 케이크에 꽂은 촛불은 자기가 끄고 싶다고 했다.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느냐고 묻더니 뭐든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엄마를 위해서 편지도 쓰겠다, 큰소리쳤다. 아이는 한 달 전부터 엄마 생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생일 축하 인사를 받으면 몸이 배배 꼬였다. 잊지 않고 인사를 전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무척 고맙지만,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걸 동네방네 알리는 느낌이랄까. 서른을 넘어서자 더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잊지 말고 미역국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전화에도 ‘생일이 뭐 별거라고, 엄마가 낳고 기르느라 고생했지~’ 웃었다.



축하 꽃다발을 받고도 시큰둥했다. 보기에는 예쁘지만, 꽃을 다루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꽃집 사장님이었던 엄마를 보고 자라 잘 알고 있었다. 홀 케이크도 부담스러웠다. 단 음식을 즐기지 않아 몇 날 며칠 먹어도 남곤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가 손꼽아 기다리던 그 날. 남편은 퇴근 후 아이와 함께 케이크를 사 오겠다고 했다. 도착할 시간이 됐는데도 두 사람은 깜깜무소식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꽃다발을 내밀었다. 제법 묵직했다.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고 주차장에서부터 끌어안고 올라왔단다. ‘이걸 사느라 늦었구나.’ 새삼 아이가 많이 자랐다는 걸 실감했다. 꽃을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감사의 의미를 담은 꽃, 영원한 사랑을 담은 꽃, 추억을 담은 꽃이래요. 꽃집에서 배웠어요. 음, 이건 뭐였더라? 맞다! 강아지풀이에요.”



아이는 꽃 이름 대신 꽃말을 들려줬다. 가슴 한구석이 짜릿했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아이와 꽃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꽃다발을 받고 이토록 설렜던 적이 있었던가.



고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육아였다. 아이가 자랄수록 더욱 그랬다. 그 고됨에 몸과 마음은 쉽게 지쳤다. 다시 힘을 내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다시 우울증의 늪에 빠져선 안 됐다. 확신도 없었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부모로서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지, 나의 마음과 진심이 아이에게 잘 전해졌는지, 지금 내가 엄마 노릇을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온통 물음표였다.



아이가 건넨 꽃다발 속에는 ‘긍정 정서’가 가득했다. ‘감사해요’ ‘사랑해요’ ‘행복한 우리 가족’…. 잠자리에서 속삭이던 말들을 한 다발로 엮어서 내게 안겼다. 물음표투성이던 마음을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양, 보란 듯이 내밀었다. 엄마의 자존감을 꽉꽉 눌러 채워줄 ‘긍정 콘텐츠’였다.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아이를 힘껏 안았다.



“엄마, 감동했어.”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전미경은 저서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에서 자존감의 네 가지 요소로 지성(합리적인 정보로 쌓은 분별력)과 도덕성(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의 윤리), 긍정 정서(나쁜 감정을 접고 접어서 작게 만드는 능력), 자기 조절력(인내와 몰입으로 작은 성취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꼽는다.



자존감은 곧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존감을 낮추는 부정 정서에서 벗어나려면 긍정 정서를 갖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공황장애는 절대 가벼운 병이 아닙니다. 그런 공황장애 환자에게도 가장 좋은 처방전 중 하나가 긍정적 정서를 키우는 것입니다. 긍정 정서를 쌓음으로써 부정적 정서를 접고 접어 작게 만들어서 축소시킬 수 있는 힘이 키워지는 것입니다.

<책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중에서>



*이 글은 조선뉴스프레스 온라인 매체 '마음건강 길(mindgil.com)'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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