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물었다, ‘무엇이 날 가슴 뛰게 했던가?’
번아웃과 우울증 사이에서
퇴근길 양재대로. 모든 감각이 둔해졌다. 진공 상태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매일 긴장 상태로 지나가던 그 길이 더는 무섭지 않았다. 숨을 크게 쉬었지만, 들이마신 만큼 내뱉을 수가 없었다. 눌린 숨을 토해내야 다음 숨을 들이켤 수 있을 것 같아 입을 벌렸다.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던 긴장감도, 해내는 데 급급하던 책임감도, 차곡차곡 쌓아가던 인내심도, 꽉 잡고 있던 핸들마저 놓아버리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어떤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힘들지도 슬프지도 아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집으로 향하는 한 시간 내내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주차하고 한참을 앉아있는데 전화가 왔다. 대학 친구였다.
“잘 사냐?”
무심하게 전한 안부 인사에 끝까지 무너져 내렸다.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는데, 나는 잘 지내지 못하고 있었다.
속에 꾹꾹 눌러두었던 것들을 쏟아냈다. 두서없고 주술도 맞지 않았다. 진작에 토해내야 했던 그것들을 내 안에서 끄집어냈다. 길지 않은 통화를 끝낸 후, 이대로는 내가 버틸 수 없겠다는 각성에 이르렀다.
번아웃 증후군을 겪은 건 꽤 오래다. 잠 부족과 잦은 잔병치레, 만성적인 근육통까지, 육아휴직 후 다시 회사로 복귀한 지 일 년 만에 몸에선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스트레스로 인해 감정 기복도 심했다. 좋은 엄마, 밥값 하는 직장인이 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워킹맘 누구나 겪는 일이니 나만 더 힘들다고 유난 떨고 싶지 않았다. 아등바등 버텼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 괜찮은지 물은 적이 없었다. 나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그게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내가 중심이었다. ‘나’를 벅차오르게 만드는 걸 찾았고 꿈을 좇았다. 꿈을 이루고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점점 단단해졌다. 일을 통해 존재감을 느꼈고 자존감도 높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나’를 위해 살았다.
그랬던 내가 엄마가 된 후로 달라졌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극강의 감정에 휩싸였다. 아이의 건강과 기분,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 집중했다. 어쩌면,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엄마의 감정과 책임감에 매몰돼 ‘나’를 잠시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몇 년 만에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취재원에게 묻는 게 내 일인데, 뭐가 그리 어려웠을까. 여러 날에 걸쳐 묻고 물었다. ‘무엇이 날 가슴 뛰게 했던가?’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가?’ ‘또, 무너진 마음을 일으킬 방법은 무엇인가?’
초등학교 시절, 아빠는 참 무섭고도 어려웠다. 그런 아빠가 내가 쓴 글 한 편을 읽고, “우리 딸 최고!”라며 추켜세웠던 때가 떠올랐다. 생각지 못한 칭찬에 썼던 글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일을 계기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쓴다. 쉼 없이 질문하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마음근육을 키워보기로 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나와 우리 사이에서, 번아웃과 우울증 사이에서 방황하는 워킹맘의 찰나를 담아내기로 했다.
다행히 지금은 우울증 증상에서 벗어났다. 집요하게 ‘나’를 파고든 덕분이다. 물론 여전히 어깨는 천근만근, 허리는 쑤신다. 그래도 마음은 한결 가볍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까. 오늘도 묻는다. ‘괜찮은 하루였지?’
*이 글은 조선뉴스프레스 온라인 매체 '마음건강 길(mindgil.com)'에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