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눈치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
관계의 위기
인간관계도 아이를 중심으로 변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이 생기면, 흔쾌히 ‘Yes’라고 해본 적이 없었다. 예고하지 않은 엄마의 부재에 대한 아이의 저항, 남편의 회사 일정, 다음날 출근과 등원, 매일 해야 할 몫의 집안일까지, 단 몇 시간의 외출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아이가 방패막이가 돼선 안 되는데, 육아가 핑계가 돼선 안 됐는데, 현실은 그랬다. 오랜 친구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니, 속상한 마음을 누구에게도 위로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나라고 왜 모임에 나가 사람들과 또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하고 싶지 않을까. 사실, 내가 더 원하는 일인데 말이다.
육아에는 변수가 많았다. 특히 아이의 건강과 안전에 관련한 변수는 평범한 일상을 뒤흔들었다. 체험 활동을 떠난 아이가 사고를 당한 그 날은 회사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응급실로 뛰어가야 했다. 갑자기 열이 오르는 날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도 어김없었다. 우리 부부는 오롯이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육아독립군이었다. 내가 아니면 남편이, 남편이 아니면 내가 달려갔다. 그럴 때면 회사 동료들의 눈치를 봤다. 눈치 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가 독감에 걸렸을 때는 도저히 휴가를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지방에서 사진관을 운영하시는 시부모님이 가게를 닫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아버님은 서울에 있는 내내 손님들의 문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퇴근 후,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냥 죄송했다. 감사하다, 죄송하다는 말에 어머님은 오히려 우리의 힘듦을 덜어주지 못해 미안해하셨다.
어린이집 선생님 눈치도 봤다. 일등으로 등원하고 제일 늦게 하원하는 아이로 인해 선생님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생후 10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고, 집에 있는 것처럼 안정감을 주고 싶은 마음에 가정어린이집을 선택했다. 보통 이곳에선 오후 4~5시면 모든 아이가 하원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도착 시각이 선생님의 퇴근 시간이었던 셈이다. 매일 1분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진땀을 뺐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를 위해 기꺼이 당직을 맡아준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기만 하다.
아픈 데도 약을 챙겨 보내는 워킹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전업맘의 하소연에도 눈치가 보였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은 함께 생활하는 친구가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누구랄 것 없이 같이 아프니 말이다. 휴가를 낼 수 없는 워킹맘은 아픈 아이와 어린이집 친구들, 그 부모에게 죄인일 뿐이었다.
자라면서 한 번도 눈칫밥을 먹어본 적 없었는데. 아이를 기르면서 온갖 눈칫밥은 혼자 다 먹는 느낌이었다. 그럴 땐 한없이 작아졌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니까,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