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꿈을 꾸는 건 사치겠지?’
자아의 위기
위기는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퇴사의 마음을 접자, 내 안의 무언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욕심과 제 역할을 해내는 직장인이 되고 싶은 강박으로 스스로 돌아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슈퍼우먼 흉내를 내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가 오랫동안 이어졌고, 하루하루 무기력하기만 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왜 그래야만 하는지’ ‘꼭 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스트레스로 감정 기복도 심했다. 지금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다가, 어느 날은 내 모습이 초라하기만 했다.
그 무렵, 허리디스크 탈출증도 선고받았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아이와 회사 걱정부터 했다. ‘며칠 집을 비워도 괜찮을까?’ ‘당장 마감할 기사는 어떡하지’ 발가락 끝 감각이 무뎌지는 상황보다 나의 부재가 가져올 여파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 상황이 불안하기만 했다. 어떻게든 수술을 피해 보려고 병원 여러 곳을 투어했다. 보존 치료를 해도 괜찮겠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낸 후에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무심결에 들여다본 거울 속의 내가 낯설기만 했다. 질끈 묶은 머리에 피로가 묻어나는 얼굴, 생기 없는 표정…. 애써 눈길을 돌렸다. ‘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생각지도 못한 순간, 펑 터져버리고 말았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결혼 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한 번도 내보이지 않았던 마음속 응어리를 꺼내놨다. 막냇동생을 낳고 출산했던 몸을 제대로 추스르기 전, 일과 육아를 감당하느라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혼자 앉아있지도 못하는 동생이 울자, 동생의 존재가 손톱보다 작게 느껴졌다고 했다. 울음소리가 시끄러웠고, 아이를 달래기보다 어떻게 하면 손쉽게 울음소리를 사라지게 할지를 생각했단다. 그때는 엄마의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래도 엄만데, 자기 새끼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 엄마의 상태를 알 것만 같았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개한 연구 자료(기혼 직장 여성의 가족 관련 가치관이 일-가정 양립 갈등을 매개로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일과 가정 양립 정도에 따라 직장에 다니는 기혼 여성의 우울감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나왔다. 직장 여성 230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해당 연구에선 직장 여성의 평균 우울 지수는 해마다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가정 양립 갈등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갈등 사유는 결혼과 육아, 임신과 출산, 가족 돌봄, 자녀교육 등이었다. 일-가정 양립 갈등이 늘어남에 따라 직장 여성들의 우울 지수도 함께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꿈에 대한 고민도 갈수록 깊어졌다. 글을 쓰면서 보람을 느끼고 자존감도 높여갔는데, 어느 순간 그냥 직장인이 돼 있었다. 일하는 엄마가 꿈을 꾸는 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월급쟁이의 역할에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활동으로써의 일을 넘어서는 나의 꿈을 꾸고 싶었다. 나를 벅차오르게 하는 무언가를 위해, 다시 간절하게 몰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의 불협화음은 마음을 더 괴롭히기만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