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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26. 2020

“그렇게 열심히 찾은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니!”

파랑새는 있다

갑자기 서글펐다. 아이를 재우려고 누웠는데, 엄마가 보고 싶었다. 설마, 아닐 거야,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 설움이 북받쳤다. 고작 세 시간 거리밖에 안 되는데, 심리적인 거리는 닿지 못할 곳인 양 느껴졌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천 명씩 나오고 이제는 개인 방역에 의존해야 할 상황이라는 데 망연자실했다. 갈 수 있을 때, 볼 수 있을 때,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을 때, 그때 해야 했다. 늦은 후회조차도 후회스러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스크와 한 몸이 됐어도, 외출 한 번 하는 게 번거로운 일이 돼버렸어도, 잘 버티고 있었다. 한 번의 일탈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답답해도 참아야 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태어나 네 번째 맞는 이 계절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미안했다. 모든 게 어른들 탓인 것만 같아서…. 그래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그리운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테니까.



집에서 복닥복닥 지내다 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미운 네 살을 갓 졸업하고 부쩍 애교스러워진 아이와 눈을 맞출 기회가 많아졌다. 아이가 그려주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부쩍 숫자에 관심을 보이더니 십의 자리 숫자까지 읽어내는 모습은 대견했다. 책 읽을 시간도, 집안을 돌볼 겨를도 생겼다. 차분히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짬도 낼 수 있었다. 사소한 변화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연말 만남도 기대했다. 얼굴을 마주 보면서 ‘일 년 동안 고생 많았다’며 어깨를 토닥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렇게 애썼으니까,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다. 12월 초, 모든 약속을 취소하면서 애써 유지하고 있던 평정심에도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와 잠자리에 누워 스마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동화를 듣는데, 무거운 공기가 있는 힘껏 가슴을 조였다. 복식 호흡을 여러 번 해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트인 공간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귓가에는 쌕쌕 숨소리와 스피커 속 스토리텔러의 목소리만 머물렀다.    

  


“얘들아, 아침이야. 어서 일어나렴.”

엄마의 목소리에 틸틸과 미틸은 눈을 떴어요.

“앗, 빛의 요정님이 어디로 사라진 거지?”

“응? 무슨 소리니. 꿈을 꾼 모양이구나.”

틸틸과 미틸이 집에 있는 새장을 보니 새장 안에는 비둘기가 아니라 파랑새가 들어 있었어요.

“어? 파랑새다!” “진짜네.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찾은 파랑새가 집에 있었다니!”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지은 동화극 ‘파랑새’였다. 크리스마스 전날, 어린 남매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는 장면. 잠에서 깬 틸틸과 미틸은 자기들이 기르던 비둘기가 파랑새였음을 깨닫는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파랑새가 있기는 한 걸까, 원망스럽기만 했다. 쉽사리 제압되지 않는 전염병의 사나운 위세 앞에서 한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서글픈 연말을 바라보면서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 없다는 게 더욱 슬펐다. 이런 감정들이 뒤섞여 우울함을 빚었고, 가슴을 짓눌렀다.



악몽 같은 잡념에 시달리던 나를 끄집어낸 건 고요한 방 안에서 들리던 아이의 숨소리, 동화 파랑새 속 아이들의 대화 소리였다.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아이를 두 팔 가득 품어줄 수 있음에 고마웠다. 내게도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멀리서 찾으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게 행복이었다.      






건강하게 곁에 머물러준 모든 이에게 고맙습니다. 덕분에 행복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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