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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19. 2020

우리 집 통장은 남편이 관리합니다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걸로

매월 15일 점심시간 무렵 은행 알림이 울린다. 월급이 무사히 입금됐음을, 이번 달도 회사를 박차고 나오지 않고 잘 버텨냈음을 알려준다. 지난 한 달간 겪은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이다. 그만둘까, 싶다가도 알림이 뜨면 마음이 누그러질 때가 종종 있다. 스트레스를 조금 덜 느끼게 만드는 일종의 마취제랄까. 슬쩍 금액을 확인하고 이체 버튼을 누른다. 통장은 다시 월급이 들어오기 전으로 돌아간다. 



사회 초년생 시절, 월급날만 돌아오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입금 문자가 뜨기 무섭게 출금 문자 폭탄이 떨어졌다. 좋다 말았다. 학자금, 월세, 각종 공과금, 보험금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저지른 충동구매 할부금까지, 이렇게까지 빠져나가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였다. 늘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게 많은 것 같은 느낌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남들은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데, 나는 매달 같은 날 상실 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손에 잡히는 게 없는 느낌이랄까. 그때 나는 보람, 성취감 같은 무형의 보상보다 통장에 쌓이는 잔액 같은 유형의 보상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경제권은 누가 관리해요? 아내가 하지?”



결혼 후 가족 계획 다음으로 많이 받은 질문이다. 경제권은 아내가 갖는 게 사회적인 통념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남편이요”였다. 대답 후에는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걸 어떻게 남편한테 맡길 수 있지?’ ‘남편을 믿어?’ ‘주도권을 뺏긴 모양이야.’ ‘에이, 그래도 경제권은 아내가 가져야지.’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이 질문을 받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설명은 한결같다. 



“잘하는 사람이 해야죠.” 



남편은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가끔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상 심리가 발동해 과감하게(?) 소비하는 나와는 달리 계획적으로 소비하는 습관을 지녔다. 매일 가계부를 쓰고 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꼼꼼하게 관리한다. 온라인 재테크 카페에 가입해 카드 혜택 최대치로 활용하는 방법, 절세하는 노하우를 배우고 적용하는 걸 즐긴다. 실제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을 땐 흐뭇함을 숨기지 못한다. 나라면 엄두도 못 낼 일들을 척척 해내고 있다. 책임감의 무게가 만만하지 않을 텐데, 덕분에 나는 한결 홀가분해졌다. 신경 쓸 일이 하나 줄어서 편해졌다. 용돈을 아껴 쌈짓돈을 만드는 재미도 쏠쏠하다. 통장만 넘겼을 뿐인데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이제야 통장을 들여다보면서 스트레스받았던 이유를 깨닫는다. 나는 내가 못 하는 것을 붙들고 있었다. 월급 관리라고는 저축밖에 모르는 사회초년생이었다. 취직만 하면 착착 돈이 모일 거라는 핑크빛 꿈만 꿨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했던 게 월급날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부부가 가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고민한다면, 주저 없이 말한다. ‘잘하는 사람이 하라’고. 경제권을 가지려고 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라고. 누가 더 돈에 밝고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며, 또 올바른 소비 습관을 지녔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보라고. 경제권을 맡겼다고 해서 나 몰라라 하지 말고 배우자를 지지하고 믿어주라고. 모르긴 몰라도, 가정의 평화는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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