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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Dec 12. 2020

내일은 양보 안 합니다

이기적이고 싶은 날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의 행렬에 끼어있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지각을 면하려면 서둘러야 다. 여유 있게 집을 나섰는데, 도로 위 사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바쁜 마음에 서둘렀다가 접촉사고라도 나면… 생각하기도 싫다.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통행 신호가 떨어졌을 때 기민하게 움직이는 것뿐이다. 운전대를 잡은 지 2년이 채 안 된 초보 운전자가 방심하는 순간, 사고로 이어진다.      



출근길에는 온갖 감정이 뒤엉켜 뛰어다닌다. 누군가는 전날 마무리하지 못한 업무 생각에 조바심이 저만치 앞서갔을 테고, 또 누군가는 새로 시작할 프로젝트로 인한 압박감에 머리가 지끈거릴지도 모른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회사에 가는 부모는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한껏 예민한 상태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감정들만 있는 건 아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는 사람도, 오랫동안 괴롭히던 고민이 바로 전날 해소돼 홀가분한 이도, 공들이던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한껏 들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운전자도 있을 테다. 그들 사이에 나도 있다.      



나는 아침마다 사치를 부린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가 조금 자라면서 출근길에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 내비게이션에 뜬 도착 시간을 슬쩍 살피고, 좋아하는 노래 목록을 재생한다. 꽉 막힌 도로에 나오면 치열하기만 하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넘어 추월하는 운전자는 예사고, 줄지어 기다리는 차량을 비집고 무리하게 끼어드는 운전자도 적지 않다. 아침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으련만, 안전을 담보로 시간을 버는 듯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난 길을 내어준다. 우리나라에서 바쁘기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워킹맘이지만, ‘양보’라는 사치를 부려본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몰라도 출근길만큼은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은, 어쩌면 나를 위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어느 월요일, 이날 따라 심기가 불편했다. 길을 내어주는 족족, 비상등 한번 켜지 않고 쌩하니 앞질러 가버리는 게 아닌가. 인지상정, 기브앤테이크(give & take)라는 말도 있는데, 불쑥 마음에 모가 났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인정받고 싶어서 건네는 양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당연하게 여겨서도 안 될 호의였다.      



이런 마음은 회의 시간까지도 이어졌다. ‘누가 맡아서 해보겠느냐’는 상사의 말에 정적이 뒤따랐다. 잠깐의 고요함을 못 견디는 사람이 일을 맡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 시간을 참지 못해 손을 들고 말았을 거다. 맡은 업무만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지만…. 그런데 이날은 하기 싫었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게 마뜩하지 않아 보였던 배려와 호의가 어느 순간 당연하게 돼버린 것 같았다. ‘내가 하고 말지’ ‘그래야 편하지’ 했던 마음이 업무 스트레스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가끔은 불편해도 이기적으로 굴기로 했다. 지각할 것 같은 날,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는 운전자에게는 길을 내주지 않을 생각이다.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를 위험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운전자에게도 틈을 주지 않을 작정이다. (부딪힐까 봐 지레 겁을 먹겠지만) 일을 맡을 때도 업무량이 많아 부담이 밀려올 때는 눈 딱 감고 “더는 맡을 수 없다”고 말하려고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거다. 여전히 내 마음이 편한 게 제일 중요하니까 감정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도 양보와 배려, 호의를 아는 이들에게만 마음을 내보이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내일은, 양보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글은 조선뉴스프레스 온라인 매체 '마음건강 길(mindgil.com)'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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