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인(人)’은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다. 지금에야 사람의 옆모습을 나타낸 글자라는 걸 알지만, 고대 중국인들은 인(人)자를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글자의 유래를 따지면, 갑골문에 새겨진 모습을 근거로 삼은 전자가 팩트(fact)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떠올려보면, 후자도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하지 않나. 서로 기대고 의지하면서 사는 인간의 모습이 글자 하나에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는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타인에게 부탁하기도, 부탁을 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역시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 느낀다.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가 내 마음 같지만은 않다. 주기만 하는 사람, 받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는 만큼 받는 사람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쉽게 각각의 사례를 마주한다. 나의 경우, 주기만 하다가 제풀에 나가떨어질 때가 잦았다. 여러 번 겪으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심리학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주는 사람이 성공한단다. 나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람(기버·giver)은 성공 사다리의 밑바닥에 떨어지기도 쉽지만, 오히려 맨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는 다소 파격적인 가설을 제시한다. 스스로 ‘호구’라고 자책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소식이다. 그는 성공한 기버(giver)와 실패한 기버를 구분한다. 실패한 기버는 이렇다.
‘이기심 없이 베풀기만 하는 기버는 타인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하찮게 여긴다. 그들은 자신의 욕구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바치며 그 대가를 치른다. 이기심 없이 베푸는 것은 병적인 이타주의의 한 형태다.’
나는 실패한 기버였다. 지혜롭게 베풀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타인의 부탁을 마주할 때, 양보하고 호의를 베풀 때도 나의 욕구와 이익을 살피지 못했다.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머뭇거리다가 만만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했다. 무리한 부탁을 소화하지 못해서 소화불량에 걸렸다. 소화하지 못할 부탁을 가려내는 방법이 없을까.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가려 먹는 것처럼 말이다. 나쁜 부탁 걸러내기다. 나를 체하게 만드는 나쁜 부탁의 특징은 이렇다.
부담과 죄책감을 동반한다. 부탁을 들어주면 부담을,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날로 먹으려 든다. 표현이 조금 과격하기는 하지만, 이것만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부탁은 상대의 능력과 시간, 경험, 수고를 구하는 행위다. 이 모든 것을 청하고, 상대가 받아줬을 때는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역할과 책임을 전가한다. 진정 도움이 필요하다면, 서포터의 역할을 청해야 한다. 나쁜 부탁은 역할과 책임을 통째로 타인에게 넘겨버린다. 한 마디로 쏙, 빠진다.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는 순간, 오롯이 내 일이 된다. 모든 게 내 책임이 돼버린다.
선이 없다. 어떤 관계에서든 부탁은 부탁일 뿐이다. 무조건이라는 건 없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선을 지켜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친하니까, 허물없는 사이니까, 남이 아니니까, 무조건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은 관계에 부담만 더할 뿐이다.
지위를 이용한다. 상하관계, 지위를 이용한 부탁은 전형적인 나쁜 부탁이다. 도무지 거절할 수 없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단골 장면이 있다. 사회적 지위가 있어 보이는 사람, 그리고 그와 마주 앉은 사람이 있다. 술을 주고받으면서 ‘이건 너에게만 베푸는 호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처음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만, 그 자리를 만든 진짜 의도는 그다음 장면에 나온다. 지위가 높은 그분은 신념과 규칙에서 벗어난 부탁을 청하고, 주인공은 난감해한다. 응할 수 없는 부탁이라고 완곡하게 뜻을 전하지만, 상대는 나지막이 말한다. “이게 부탁처럼 보여? 명령이야 명령!” 답이 정해진 부탁, 거절조차 할 수 없는 최악의 부탁이다.
애덤 그랜트는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을 테이커(taker)라고 부른다. 나는 이 테이커가 과한 욕심을 부릴 때 나쁜 부탁을 하게 된다고 본다. 그럴 때 우리는 성공한 기버의 모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성공한 기버(giver)는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되, 이익도 잊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베풀지 선택한다. 기버는 자신의 건강을 돌보면서 배려해야 연료를 완전히 소진하는 일 없이 더 크게 번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