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가장 아름다운 서른일곱

by 김명교

어느 날, 일하다 말고 문득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었다. 보통 집중력이 방전됐을 때, 아이 사진을 보려고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오늘 아침, 어제저녁, 그제 오후…. 사진을 좇아 시간을 거슬러 가다 보면, 하루가 다르게 부지런히 성장하는 아이가 그곳에 있다. 나를 닮은 웃음은 갓난쟁이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사진 몇 장 봤을 뿐인데, 잔뜩 찌푸리던 마음에도 여유가 돌아온다.


그곳에는 내가 없었다. 어디에도 내가 없었다. 외출했다가 함께 찍은 사진 몇 컷조차 아이가 중심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아이의 오늘과 우리의 추억을 담아내는 게 중요했으니까.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나이가 들어 변해가고 있을 텐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30대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겠더라. 나답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셀카를 찍던 적도, 남자친구의 카메라 세례를 즐기던 때도 있었다. ‘이게 나야’ 하면서 당당하게 포즈를 잡았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외출했을 때도, 내부 인테리어가 유난히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에 갔을 때도, 벚꽃이 흩어지는 공원에서도 주인공은 나였다. 옷이나 장소, 계절은 나를 돋보이게 만드는 도구에 불과했다. 사진 한 장에 그날의 기분, 상태, 분위기, 마음마저 새겨졌다.


사진 속 내 모습을 보면서 예쁘다고 말해줬다. ‘예쁘다, 예쁘다’ 주문처럼 외우다 보니, 정말 예뻐지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를 향해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표현하지 않는 게 되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대상이 자신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만큼 기록했고, 기록하는 만큼 사랑스러워졌다. 그렇게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자존감 높고 자기애로 충만한 한 여자가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서른일곱의 여름을 맞이하고서야 알아챘다.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매일 거울로 얼굴을 살피지만, 눈을 감으면 나의 눈, 코, 입, 얼굴형, 그리고 표정이 어땠는지조차 기억나질 않았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까. 자신을 사랑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던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다시 오지 않을 나의 30대 후반을 기록하고 싶었다. 담담하게 마흔을 준비하고 있는 생애 가장 젊고 아름다운 서른일곱의 나를 남겨두고 싶었다. 가을 즈음 촬영하는 것을 목표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보기로 했다. 사진을 전공한 남편에게 부탁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거야? 가을이 오면 사진 한 장 찍어줄래? 휴대전화로 찍는 거 말고. 작은 스튜디오 하나 빌려서 화장도, 머리도 예쁘게 하고 지금 내 모습을 남기고 싶어.”


품고만 있던 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아주 조금은 겁이 나더라.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 않나. 내 얼굴이 어떻게 변했을지, 알아서 예쁘게 보정해주는 필터 없이 그 모습을 그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두려워졌다. 서른일곱의 내 얼굴에 방황과 고민, 그리고 여전히 답을 내릴 수 없어서 쉼 없이 흔들림을 반복하는, 적나라한 흔적이 곳곳에 박여있을까 봐.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서른일곱의 나는 어느 때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나를 온전히 칭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 이런 생각할 시간에 나를 더 어여삐 여기자, 세상 누구보다 치열하게 나를 사랑하자, 다짐한다. 나는, 누가 뭐래도, 충분히, 사랑받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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