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빠르게, 가슴이 차가워졌다
그깟 말 한마디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절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 어떻게든 피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지만, 들어맞지 않길 바라면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그 끝을 보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민한다.
그래도 도리 없을 때가 있다. 내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그 흐름을 끊어내지 못하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인정하고 나면 불편했던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잔잔해진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렵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시간이 억울해지지만, 그것 또한 겪고 나서야 알아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여전히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누군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다른 누군가도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기란 불가능하다. 불완전한 존재다. 수많은 불완전한 존재가 모여 사는 것이 사회다. 서로 돕고 위하면서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또 의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살아간다.
애써 상대의 부족함을 들춰내려고 하지 않았다. 부족함에 현미경을 들이대지도 않았다. 나를 포함해 누구에게나 몇 개씩 있는 ‘그 부분’만 굳이 확대해서 바라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못 본 체했던 것 같다. ‘그럴 이유가 있었을 거야’,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닐 텐데’,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닐까’,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지’, 이해해야 할 온갖 이유를 찾았다. 내 방식의 배려였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내 마음을 지키는 방패였다. 나는 이것을 다른 말로 ‘존중’이라고 부른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완벽하지 않은 우리라서 반드시 장착해야 하는 미덕이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진작 알아챘다. 표정과 태도, 행동…. 비언어적인 표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도 이해했다. 사람마다 표현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까.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나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 때때로 서운함이 밀려왔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길 바랐을 뿐이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생색내려던 건 더욱 아니다. 보이지 않는 이런 노력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길 바랐다. 그렇게 인간관계의 단절에 유예기간을 뒀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마음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가슴이 차가워졌다. 어느 때보다 이성적이고 냉정해졌다. 고작 말 한마디, 아니 그깟 말 한마디에. 말 한마디에 상대의 밑바닥을 봤다. 이해나 배려, 존중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겨졌다. 보고 싶지 않았던,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최후를 결국 맞이하고 말았다. 그 사람은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그렇게 유예기간은 끝이 났다.
말은 거짓이 없다. 내면 깊숙이 꼭꼭 숨겨뒀던 진짜 속내가 어느 순간 툭 불거져 나온다. 화가 나거나 흥분했을 때는 더욱 거칠게 터져 나온다. 이 순간을 잘 다스려야 한다.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됨됨이를 들켜 버릴 수 있다. 밖으로 내던져진 말이 모여 사람을 이룬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비록 누군가의 말 때문에 마음은 조금 차가워졌지만, 말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더욱 뜨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