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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교 Sep 18. 2021

"내 얼굴 보지 마세요"

"달콩아, 그거 알아? 엄마가 스트레스 받아도 이렇게 달콩이 얼굴 보고 있으면, 이렇게 웃음이 나는 거?"



"정말요? 다시 웃어 보세요."



"그럼~. 엄마랑 아빠는 스트레스 받아도 달콩이만 보면 즐거워져."



"(손으로 오른쪽 뺨을 가리면서) 엄마, 그럼 내 얼굴 보지 마세요."



"왜? 보고 싶은데?"



"오늘 넘어져서, 다쳐서, 내 얼굴 보면 엄마 스트레스 받잖아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달콩이가 다친 건 속상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냐. 달콩이 얼굴 보고싶어."



"그래요? 그럼 보세요, 엄마. 웃어요."


 




명절을 앞두고 아이가 다쳤다. 놀다 보면, 요즘처럼 외부 활동에 제약이 있을 땐 아이의 에너지가 터져 나오면서 다칠 일이 잦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속상한 마음을 애써 다독인다. 여기저기 부딪혀 멍든 다리를 보면 말없이 여러 번 쓰다듬는다. 속으로는 얼마나 아팠을까, 하면서. 겉으로는 과장스럽게 '호~' 소리까지 내가며, 엄마가 호, 했으니까 얼른 나을 거라고 말해주고 만다. 어쩌다가 다쳤느냐고 물으면 기억조차 못하더라. 신나게 노느라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왜 다쳤느냐고 다그치는 건 아이 마음만 불편하게 할 뿐이다. 



이번에는 얼굴이었다. 어린이집 실내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져 오른쪽 뺨에 상처가 났다. 많이 아팠겠다. 괜찮아? 아파서 울었어? 에고, 넘어져서 속상했겠다. 아이의 마음부터 헤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어봤더니, 친구가 미는 바람에 넘어졌단다. 그랬구나, 친구한테 이제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지 그랬어. 그래, 친구도 이제 그러지 않을 거야. 너무 속상해 하지 마. 약 바르고 밴드 붙였으니까 얼른 나을 거야.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아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했다. 



속마음을 들켜버렸다. 엄마의 속상한 마음을 아이가 알아버렸다. 아마도 표정 관리가 안 됐을 테지.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어주려다 말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면서 웃었다. 평소 같았으면 빨리 책을 읽어달라고 재촉했을텐데, 오늘은 눈을 맞추더니 씩, 웃었다. 아이에게 고백했다. 네가 너무 좋다고. 너를 무척이나 사랑해서 스트레스 받고 힘들다가도 네 얼굴만 보면 웃음이 난다고. 즐거워진다고.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고. 그랬더니 작은 손바닥으로 다친 뺨을 가린다. 자기 얼굴을 보면 엄마가 더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면서. 



아이의 말에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어느 날은 기쁨이 차올라서, 어떤 날은 가슴이 아려서. 이번에는 미안함이었다. 엄마의 속상한 마음을 위로하려고 애쓰는 그 마음에 미안해서 더 활짝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한다고 더 많이 표현하는 것말고는 당장 할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도, 네 마음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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